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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Apr 11. 2022

tree_3. 아들의 꿈

"커서 뭐 하고 싶니?"

얼마 전 장인어른을 뵈러 가는 차 안에서 아들에게 물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야 한단다. 아이들은 아직까지 직업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 보육 도서에서 읽은 내용이다. 맞는 말인데, 부모의 욕심에 생각이 닫힌다.


아들의 대답은 '획기적'이었다.

"커서도 놀고 싶어. 그냥 계속 놀고 싶어."

산소로 가는 무거운 차 안에 순간 폭소가 터졌다.

"뭐하고 놀고 싶어?"

"그냥 오늘도 놀고 내일도 놀고. 그러고 싶어."

"..."

"세계테마기행 하고 싶어."

동문서답임을 눈치챈 아들이 고쳐 말했다. 세계테마기행은 세계 유명 여행지를 소개하는 아들이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다.

아들은 이날 '여행가'라는 직업 알게 됐다.


"여행가가 되려면 뭘 잘해야 할까?"

"..."

"세계테마기행보면 여행하는 사람들이 다 영어를 쓰잖아. 영어를 잘해야 해."

정말 여행가가 되고 싶은지 아들은 '영어'에 대해 순순히 받아들였다.


'난 왜 그토록 기자가 되고 싶었을까.'

몇 해 전 기자를 그만두자고 결심했을 때 자문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 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과 관공서에 가거나 부모님이 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유독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불합리하게 손해를 보고 있다는 근거 없는 의심도 했다. 양복 입은 사람들은 늘 '갑'이었고 우리 부모님과 같은 사람들은 늘 '을'이었다. '우리가 힘이 있으면 홀대를 당하지 않을 텐데...' 항상 머릿속에 맴돌았다.


공부머리가 없었던 나는 중학교 때 장래를 정했다.

'기자.'

판사나 검사, 의사, 회계사... 이런 직업들은 나에게 '넘사벽'이었다. 기자는 그나마 내가 접근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기자가 되면 힘을 얻고, 권력을 갖고 사회의 주류로 올라설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당시 방영된 '신문방송학과'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나를 더욱 자극했다.


아버지는 새벽 장사를 하면서도 꾸준히 신문을 구독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읽으셨다.

현관문 한쪽에는 지난 신문들이 늘 쌓여 있었고 한 번씩 아버지가 "신문 좀 내다 버려라"라고 말씀하시기했다. 초등학교 때는 숙제 같았던 '폐품 수집일'에 맞춰 내가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노끈으로 묶어 선생님에게 제출했다.


아버지는 신문을 읽다가 시간이 되면 9시 뉴스를 꼭 보셨다. 우리에게는 한 번도 "신문 읽어라", "뉴스 봐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물론 "공부하라"는 말씀도 안 하셨다. 아버지의 꿈은 뭐였을까. 한 번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을 테고, 되고 싶은 것도 있었을 텐데... 가난 때문에, 가족 때문에 자신을 버린 아버지. 가엾은 아버지... 죄송하고 너무 그립다.


나는 꿈을 기자로 정한 후 뉴스와 신문에 관심을 가졌지만 열정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때는 공부를 안 해도 성적을 냈지만, 고등학교 때 얄팍한 지식의 한계를 드러냈다. 삐딱하게 나가진 않았지만 운동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항상 어울려 다녔기 때문에 공부는 뒷전이었다. 


그렇게 놀면서도 가슴 한 켠에는 늘 기자의 꿈을 안고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한 번도 내가 뭐가 되고 싶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 아버지도 물어보신 적이 없다.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면서 기자가 장래희망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아셨다.


'놀고 싶다니...' 아들의 장래희망을 듣고 나니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분명 자라면서 수십 번 바뀔 텐데도 벌써부터 걱정된다. 보육 도서에는 '아이를 이해하라'라고 하는데 쉽지 않은 것은 부모의 마음일까, 부모욕심일까. 집에서든 밖에서든 안전사고에 유별난 나를 보고 얼마 전 아들이 한 말이 가슴을 친다.

"아빠는 뭐 그렇게 걱정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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