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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Apr 10. 2022

tree_2. 아버지 과거

"머리가 좋은 사람이야."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후 같이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고, 고단한 일상이 반복되면서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졌다. 할머니를 포함해 세 명의 삼촌들과 갈등까지 겹치면서 정말 죽지 못해 살아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아버지가, 때로는 삼촌들이 밥상을 뒤집어엎었던 사건은 잊히지 않는다. 열 살 채 안됐을 때인데 뚜렷하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항상 "머리가 좋고 생활력이 강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칭찬이다.


아버지는 지리산 자락에서 어려운 형편에 중학교를 다니다 말고 돈벌이에 나섰다. 어린 나이에 서울에 올라와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는데, 한 번은 뚝섬 인근 합숙소 같은 곳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잠을 자다 연탄가스 사고가 발생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한다. 실제로 몇 명은 유명을 달리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생전에 서울 길을 속속들이 아신 것도 이때의 경험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유달리 길 눈이 밝았다. 아버지가 첫 사업으로 운송업을 선택하신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청년이 된 아버지는 고향에서 운송업에 뛰어들었고, 제법 사업이 번창해 몇 대의 차량을 운행했다. 집안 어르신들의 부탁으로 운전면허증이 없는 친척들에게 운전대를 맡겼는데 여러 차례 교통사고를 내면서 사업이 망했다고 한다. 운송업을 할 때는 집에 장난감이 많았고, 외사촌 형님이 시골에서 올라와 우리 집에 하숙하며 대학 입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빚쟁이가 된 아버지는 어머니와 삼 남매를 데리고 새로운 도시로 와 새벽 장사를 시작했다. 내가 태어난 지 4개월 때 일이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과거다. 왜 어릴 때는 아버지의 살아온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았을까. 여쭤보지 못한 게 후회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들에게 내가 어렸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버릇이 생겼다. 검소함과 자립심을 가르치려는 교육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한 번은 고향에 내려가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 아들을 데려갔다. '아빠의 과거'를 공유하고 싶었다. 유치원 때 걸어갔던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걸어갔다. 인도가 없는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갔고 중고가전시장을 지나갔고 집인지 점포인지 모르는 단층 건물들을 스쳐갔다. 길이 조금 넓어진 외에는 30여 년 그대로였다.


내가 궁금해서 길을 나섰지만 아이반응은 의외였다. 나보다 더 많이 궁금해했고 질문이 많았고 즐거워했다. 특히 이런 길을 혼자 걸어 다녔다는 데 대해 놀라면서도 '신났겠다'는 표정도 읽혔다. 지금 아이가 등교하는 안전 하지만 지루한 길을 생각하면 아빠의 등굣길은 그 자체가 모험이었다.


유치원 앞에 살고 있는 할머니를 만난 것은 극적이었다.

"자기가 다니던 유치원에 아들을 데리고 일부러 찾아오는 아빠도 있네."

할머니는 내가 유치원을 다닌 시절에도 이곳에 계속 사셨다고 했다. 물론 할머니도 나를 모르고, 나도 할머니를 모른다. 영화였다면 과거 어느 한 시점으로 돌아가 아줌마와 아이로 스쳐 지나간 장면이 나왔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가 낯선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거신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33년 만에 찾아온 유치원은 사회복지시설로 변해 있었고 그 전에도 여러 차례 용도가 바뀌었다. 할머니가 되살려준 유치원 이야기로 30여 년간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아련함이 다시 살아났다.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추억 속 경험이 실제 하는 순간이 소중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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