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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Apr 07. 2022

tree_1. 아빠가 되는 중

감성과 이성의 싸움

야근으로 늦은 퇴근길, 일곱 살 아들이 헬멧이 없다고 연락 왔다. 

당장 내일 유치원에서 인라인스케이트 첫 수업이 시작되는데 강당에 덩그러니 앉아 있을 아들을 생각하니 서글퍼진다. 예전에 사둔 헬멧을 찾지 못하는 아내가 원망스럽고, 헬멧을 어디 놔뒀는지 기억 못 하는 나 자신도 한심했다. '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자책하는 시간도 낭비였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고 휴대전화를 누르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부족하지 않게 키우려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장남인 아버지는 12년 전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좀 먹고살만해지니 돌아가셨네..." 조문 왔던 친지들 말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재래시장에서 내 나이만큼 새벽 장사를 하면서 우리 삼 남매를 키웠다.

내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면서 빚쟁이가 됐고 가정은 무너졌고 고향을 떠나왔다.

아버지의 1순위는 돈벌이였다.

새벽 4시 15분, '따릉 따릉 따르르릉' 아버지의 요란한 알람 소리. 아버지는 가장 시끄러운 알람 시계를 사셨다. 꽹과리 소리 같았다. 아버지는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절박하게 사셨다. 밤 10시쯤 되면 금방이라도 퍼질 듯한 트럭 엔진 소리와 함께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중고 트럭도 부모님 만큼 지쳤다.

시장에 머무른 인생이었다. 살아계셨어도 새벽 장사는 계속하셨을 것 같다. 지금 어머니가 그렇다.


덕분에 삼 남매는 자립심이 생겼다. 남들에게 자유분방하게 자랐다고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을 먹고 가방을 챙겨 유치원으로, 학교로 각자 걸어갔다.

준비물이 있으면 전날 밤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돈을 받았다. 그 돈을 가지고 등교 길에 준비물을 샀다. 부모님은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도 '학교 준비물'이라면 돈을 조금 더 많이 주셨다. 배우지 못한 서러움과 챙겨주지 미안함이 배어 있다. 덕분에 나는 문방구에 있는 오락기에 좀 더 오래 쪼그려 앉아 있었다.

준비물을 기억하지 못해 미리 준비하지 못한 일도 꽤 있었다. 선생님에게 크게 혼난 기억은 없다. 같은 반 아이들 절반이 비슷한 상황이어서 부끄럽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삼 남매는 그렇게 학교 생활을 알아서 했고, 부모님도 '알아서 하리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우리는 학교 생활에 대해 거의 얘기한 적이 없고 부모님도 물어보신 적이 거의 없다. 공부는 못 했지만 삐딱하게 자라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빠가 되고 나니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부족하지 않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못해줬을 때의 그 안타까움. 아버지가 30여 년 전 속으로 앓았던 그 쓰라림이 이제야 느껴졌다.


순간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마트로 달려갔다. 스마트폰을 보고 머릿속에 정리한 동선대로 마트를 돌아다녔고 다행히 어린이용 헬멧을 찾았다. 안전표시사항을 꼼꼼히 읽고 비교해서 더 낫다고 생각되는 제품을 샀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을 처리하려니 순간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야근을 두 번하는 기분이다. 


집에는 왔지만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집안 곳곳을 뒤졌다. 드디어 찾았다. 집에 있을 거라는 확신에 처음부터 새로 산 헬멧은 뜯지 않았다. 샤워하는 내내 왜 기억을 못 했는지, 환불은 받을 수 있을지, 마트에 지금 전화해야 하는지... 머리카락을 감았는지 안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걱정과 생각으로 가득 찼다.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서야 긴 하루가 끝났다. 잠자리에 드니 차분해진 마음에 이성이 돌아왔다. 사실 헬멧을 안 가져가서 친구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경험일 텐데 말이다.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됐을 텐데 말이다. 자식을 키우는 건 결국 부모의 감성과 이성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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