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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로펌에도 연줄이 있다

캐나다 연줄 이야기 (2)

by 신광훈

캐나다에는 연줄이 워낙 일반화 되어 있다보니 연줄이 늘어져 있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캐나다에서 지적재산권으로는 가장 크다는 명성이 있는 내 첫 로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 보다 1년 늦게 로펌에 summer student로 들어온 여학생이 있었다. 우리 회사의 Steve라는 변호사와 함께 지적재산권 분야 Top 5 소송 변호사로 꼽히는 다른 로펌 변호사의 딸이었다. 왜 아빠가 파트너 변호사로 있는 로펌에 지원하지 않고 다른 로펌에, 그것도 경쟁 로펌에 지원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아마도 말이 나는 것을 피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만일 그렇다면 가족을 채용하는 부분은 캐나다 내에서도 암묵적으로 좋은 연줄의 사례가 아닌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국이라면 물론 난리가 났을 일이고).


다른 글에서 말했다시피 변호사끼리는 다 “friend”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이 학생의 아버지와 우리 회사의 파트너 변호사들과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1년에 몇 번씩은 서로를 집에 초대할 정도였으니 이 여학생은 우리 회사 파트너 변호사 대부분을 이미 대학생 시절에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연줄에 관대한 내 동기들은 이 부분을 오래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2년 후 내가 변호사로 채용되어 일하던 1년차 시절, 주말에 10층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로스쿨을 졸업하고 연수생으로 일하던 그 여학생이 9층에서 전화를 했다. 일을 하는데 9층 전체에 불이 꺼졌다며, 왜 불이 꺼졌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건물은 주말에는 전체 건물이 2시간마다 불이 꺼지기 때문에 주말에 회사에서 일을 하려면 2시간마다 해당 층의 메인 스위치가 있는 곳에 가서 불을 켜 주어야 했다. 그리고 Summer student 를 거치면 누구나 주말에는 2시간마다 불이 꺼진다는 것과 어떻게 다시 불을 켜는지 알게 된다. Summer student 시절에는 많은 주말을 회사에서 보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을 제 시간에 잘 해 내는 것을 보여 주어야, 다음 해 summer student로 다시 채용이 되고, 그 후 다시 연수생으로 채용이 되니까.


하지만 이 여학생은 연수생이 되어서도 불을 어떻게 켜는지 몰랐다는 것이고, 그건 summer student 생활을 2년이나 하면서 한 번도 주말에 일을 해 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본인이 연수생으로 뽑힐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 학생의 실력은 그다지 출중하지 않았으니 참 놀라운 자신감이었다.


이 이야기를 캐나다인 동기 변호사에게 해 주었더니, 그 친구도 황당해 하는 것을 보면서 연줄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한 번 더 느꼈다.


하지만, 연줄만으로 끝까지 밀어줄 수 있는 경우는 또 거의 없다. 어느 정도 지위에 이르면 이제 실력을 증명해야 하고, 증명하지 못하면 연줄은 끊어진다.


그래서 그 여학생은 이제 그 로펌에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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