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드래곤 라자 같은 변호사 말고 트리오 같은 변호사

by 신광훈

나는 세미나 요청을 많이 받는다. 한국 회사에서 세미나를 지겹도록 진행하면서 익힌 요령들 덕분이리라.


큰 교회들에서도 세미나 요청이 들어오는데, 대부분 노인대학을 운영하기 때문에 교회 세미나는 유언이나 상속에 대한 요청이 주를 이룬다. 물론 자선단체인 교회를 위한 세미나이니 나도 강의료를 받지는 않는다.


유언이나 상속 세미나를 하면 가장 먼저 설명하는 내용이 유언이 없으면 유산이 어떻게 처리되는가 하는 것이다. 유언이 없을 때 유산이 처리되는 방식에 불만이 없으면 굳이 돈 들여서 유언을 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법도 마찬가지다. 갈등은 법이 없이, 변호사 없이 처리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는 거야 좋은 일이지만, 갈등이 해결이 되지 않아 변호사를 만나는 경우라면 변호사만 좋은 일 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로스쿨 1학년 계약법 시간에도 비슷한 맥락의 강의를 들었다. 아마 실화는 아닐 테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다.


한 여학생 법대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에게는 아이가 있었단다. 남편과 이혼한 터라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수업을 듣곤 했는데, 하필이면 아침 수업이 있는 어느 날 유치원이 하루 문을 닫았다. 고민 끝에 로스쿨에 다니는 그 엄마겸 학생은 할 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수업에 참석했다. 교수님께서는 물론 흔쾌히 허락하셨고.


교수님이 그 날 배울 계약법 내용을 설명하고, 미리 내온 과제도 질문하면서 학생들이 기본기를 익혔음을 확인한 후, 문제를 하나 내셨다.


A사가 B사에 매달 100개의 부품을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매달 100개씩 꼬박꼬박 12개월 동안 아무 문제없이 납품이 진행되고 자금 결제도 잘 이행되었다. 그런데, 13번째 달에 그만 100개에서 1개가 모자란 99개가 납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B사는 A사를 고소했다. A사와 B사의 입장을 논하라.


말하기 좋아하는 로스쿨 학생들이 교수 눈에 들기위해 열심히 법을 들먹이며 A사를, 혹은 B사를 지지하는 논리를 쏟아놓는다. 12개월간 잘 이행된 계약이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B에게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피해액은 이렇게 산정해야 한다 등등 수 많은 논쟁이 이어졌다.


논쟁이 잦아든 후, 가르친 것이 충분히 논의된 것을 본 교수님은 흡족한 표정으로 묻는다. 더 보탤 것이 있는 사람?


그러자 누군가 손을 든다. 엄마겸 학생이 데려온 꼬마 아이다. 엄마는 당황하고, 다른 학생들은 재미있어 하고. 교수도 웃으며 묻는다. 그래,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저라면 먼저 미안하다고 하겠어요.


그 말을 듣고, 법대생도, 교수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교수님의 이야기였다.


그렇다. 법을 들먹이고 변호사를 고용하기 전에 누군가 먼저 미안하다고 했다면 변호사가 필요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계약법 교수님께서 굳이 이 이야기를 하신 것도, 변호사로서 계약만을 놓고 다투기 전에 사람을 놓고 생각해야할 것들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시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처음 일하던 로펌은 캐나다에서 지적대산권 분야에서 가장 큰 곳이었고, 대부분의 고객이 Fortune 500에 나열되는 회사들이었다. 당연히 그 로펌은 고객의 이익만 생각하고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만 최선을 다한다. 사건마다 몇 백억은 쉽게 오가는 경우이니 상대방을 고려할 여지는 없다. 소송에서 지면 제 아무리 Fortune 500라고 해도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사건도 부지기수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변호사는 드래곤 라자라는 판타지 소설 속 드래곤 라자를 닮았다. 이영도 작가께서 초기 PC 통신인 하이텔에 연재하던 소설인데, 드래곤 라자란 인간이지만 드래곤에게 선택받아 그를 통해 드래곤이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 주는 존재다. 드래곤 라자는 드래곤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닌데, 일단 드래곤에게 선택이 되고나면 드래곤 라자의 존재는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드래곤을 조종하는 것도 아니고, 드래곤과 인간 사이에서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를 통해 드래곤과 인간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고객에게 선임되기 전에는 변호사도 한 개인으로서 하나의 사건에 대한 가치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사건을 수임하면 오직 고객의 이익만이 중요해진다. 원래 변호사라는 제도가 만들어진 근간이 그러하니, 법률 시스템이 이렇게 운영되는 것을 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더 많은 갈등과 싸움을 불러일으키고, 법률 분쟁을 돈 싸움으로 몰고가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묵과해서는 안 된다.


나는 지금은 Fortune 500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한인 사회에서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는 변호사다. 물론 대형 로펌에서 일하든 작은 community에서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든, 똑 같은 변호사 윤리규정이 적용되니 나 역시 내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나처럼 크지 않은 community에서 일하는 변호사라면 드래곤 라자 같은 변호사가 아니라 트리오 같은 변호사가 되어야 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트리오라는 브랜드로 대표되는 식기 세척제나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비누, 샴푸, 치약 등등은 모두 계면활성제라고 불리는 물질들이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계면활성제는 한 쪽에는 물과 친한 부분을, 다른 쪽에는 기름과 친한 부분을 가지고 있어서 물과 기름에 이 계면활성제를 넣으면 물과 기름을 섞을 수 있다. 그래서 트리오로, 비누로, 샴푸로, 그리고 치약으로 우리는 물로 닦이지 않는 것들을 해결한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많지 않은 10만 한인들 사이에서도 종종 크고 작은 법률 분쟁이 발생한다. 다행히 변호사가 개입하기 전에 잘 마무리가 되면 좋은 일이지만, 한 쪽이 변호사를 고용하면 다른 쪽도 변호사를 고용하게 되는데, 변호사들은 원칙적으로 양보를 할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싸움이 수그러드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진다. 자의든 타의든 두 한인 변호사들이 개입해서 일을 더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그럴 것이 아니라 변호사가 계면활성제처럼 물과 기름을 융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변호사들이 트리오의 역할을 하는 건 엄밀히 말하면 변호사 규정상 옳은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얼마 전에 인기리에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본인의 가치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고객을 변호하고 고민하는데, 사실 고민할 일은 아닌거다. 그런 일 하라고 만든 것이 변호사라는 직업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경험상 두 변호사가 암암리에 뜻을 맞추면 변호사도 물과 기름 사이에서 어느 쪽의 이익도 희생시키지 않고 원만한 타협을 이끌어 내는 계면활성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어쩌면 한인 사회 내에서는 그런 역할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변호사를 시작하고 많이 듣는 표현 중 하나가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라는 말이다. 하지만, 상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상식에 따라 움직일 때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미 나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서로 다른 상식을 이어주어서,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고, 법적으로 말이 되는 해결책을 가져오는 변호사, 나는 오늘도 트리오 같은 변호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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