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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Mar 13. 2023

사람이냐 종이냐

소프트 파워를 원한다면서 하드한 것만 찾고 있었다

내 변호사 사무실은 물론이고, 다른 종류의 회사에 지원한 캐나다 대학 졸업생들의 지원서를 보면 유난히도 소매업종 관련 아르바이트 기록이 많다. 식당에서 알바한 일, 카페에서 알바한 일, 옷 가게에서 알바한 일, 이런 일들을 시시콜콜하게 쓴다. 


처음에는 얼마나 쓸 내용이 없으면 이런 내용을 이력서에 쓸까 싶었다. 


어느 연구에 참여해서 논문이 나왔다거나, 스키 대회에서 상을 탔다거나, 봉사단체에서 오랫동안 봉사를 했다거나, 뭐 이런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매업 알바, 소매업 알바, 또 소매업 알바라니.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캐나다에서 대학생을 뽑는 많은 회사에서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 이런 서비스 업종의 알바를 한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이런 종류의 알바는 고객 응대가 필수이니, 고객 응애 과정에서 익혔을 대인 관계의 요령이나, 고객 응대라는 감정 소모 작업을 견디면서 길러졌을 성품이나, 고객 응대 과정에서 익힌 자연스러운 잡담 (small talk) 능력을 중요하게 본다는 것이다.


살짝 충격이 왔다. 나라면 글쎄, 얼마나 오랫동안 바에서 일했느냐 보다는 바텐더 자격증을 땄는지 안 땄는지를 더 중요하게 볼 것 같은데. 


고용주들이 일반적으로 서비스업 경력을 중요하게 보니, 학생들도 그런 일을 낮춰 보지 않는다. 내 딸도 대학이 결정되고 나서 고 3때 1년간 카페에서 알바를 했다. 나는 차라리 아빠 로펌이나 다른 로펌에 가서 일하면  (빽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영어와 국어가 다 잘 되면서도 최소 시급만 주면 되는 알바생에 대한 수요는 한국인 변호사 사무실에 항상 있으니까) 나중에 이력서가 더 좋아 보이지 않겠냐고, 카페보다는 로펌 경력을 더 값 있게 봐 주지 않겠느냐고 했으나, 딸의 생각은 달랐다. 


나중에 생각하니, 딸은 학교에서 내가 생각하듯이 배우지 않았을 테고, 딸의 선배들도 딸에게 내 생각처럼 조언하지 않았을 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한국에서 교육받고 일하기를 40년간 해 온 나나 내 아내에게만 이해되지 않는 선책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결국 일을 하는 건, 결정을 하는 건, 아직은 사람이지 종이가 아니고, 컴퓨터도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업무의 기본이 되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자신의 실제 능력보다는, 자신을 좋게 보일 결과물과 스펙에만 집중해서는 멀리 가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은 하게 된다. 


내가 남들보다 10가지 칵테일을 더 만들 줄 알고 바텐더 자격증도 있는 바텐더를 찾고 있을 때, 캐나다의 다른 회사는 마티니 하나 밖에는 잘 만들지 못해도 고객이 즐겁게 마시고 돌아가서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바텐더를 찾고 있었다. 변호사 사무실같은 서비스 업종에서는 종이를 다루는 일 못지 않게 사람을 응대하는 일이 중요함에도 나는 그런 스킬을 찾고 있지는 않았다. 


나도 그랬고, 한국의 다른 회사들도 아마 그랬을테니, 어쩌면 그래서 스펙 좋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리더의 자리에 올라가지 못하고 일 잘하는 직원으로 밖에 머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캐나다의 교육이 종이를 너무 소홀히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 아들과 딸은 적어도 나보다 훌륭한 소프트파워를 지니고, 소프트파워를 알아보는 안목을 가졌을테니, 그것도 캐나다에서 교육시킨 장점이라면 장점이겠구나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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