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광훈 Apr 06. 2023

유태인은 여름방학 때 만들어진다

딱 한 번, 유태인이 부러워질 때

몇 주 전에 유튜브에서 중국인들이 한복을 자기네 옷이라고 미국의 한 대학 수업시간에 주장하는, 그리고 미국인 교수가 그에 반박하는 영상을 보았는데, 그 이후로 유사한 영상이 계속 떠서 보다보니, 세상에, 중국의 작업은 간도에 대한 동북공정을 넘어서서, 한복을, 김치를, 고추장과 한류까지도 자기네 것이라 하고, 세종대왕과 안중근 의사와 이순신 장군을 중국인이라 하며, 한글이 한자에서 온 것이라 하고, 한국은 오래 전부터 중국의 속국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물론 영상에서는 수업을 진행하던 미국 혹은 유럽의 교수가 적절하게 대처하는 내용이 올라오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40년을 살면서 소위 고등교육까지 마친 나는 저 미국인 교수만큼이라도 반박을 할 수 있을까. 막무가내로 중국이 한국 문화의 원조라는 것이 확실하니 근거 따위는 필요없다는, 중국 교과서에 실린 것이 진리라는, 그런 중국인들 앞에서 나는 얼마나 제대로 반박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없다면 우리 아이들은 더더군나다 뭘 할 수 있을까. 


해외에 나가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다 보면 한국에 대한 교육이나, 한국에서는 지나가는 말로라도 당연하게 배우는 과거에 대한 내용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된다. 역사책이라도 읽히고 싶어 책은 부지런히 쌓아 놓지만, 아이들이 읽어 줄 리 만무다. 


나는 딱히 유태인을 부러워하지는 않지만, 이럴 때는 그네들이 부럽다. 


캐나다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는 여름 방학이 길다. 옛날옛적 여름에 농장 일을 도와야 해서 여름 방학을 길게 했던 미국의 일정에 맞추어 넉 달이나 되는 여름방학에 겨울방학은 1주일도 안 되는 미국의 시스템을 따라 도입한 것인데, 이제는 북미 전체의 교육일정으로 굳어져서 바꿀 수도 없다. 


캐나다에서 대부분의 초등학생, 중학생들은 여름 방학 때 summer camp라고 불리는 일종의 특별활동을 하고, 고등학생들은 이런 곳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수영, 미술, 요리, 아이보기, 태권도 등등 수 백가지의 프로그램이 여기저기에 있고, 심지어는 한국 부모들도 여름마다 캐나다의 summer camp에 아이들을 보내서 영어 교육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에도 작년에 그런 학생이 엄마와 묵었었다. 


그런데, 유태인들이 유태인 학생들을 위해 진행하는 summer camp 가 따로 있다. 이 camp에서 유태인 학생들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유태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어를 배운다. 그렇게 여름 방학 동안, 여러가지 활동과 놀이를 통해서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후대에 남기고, 그렇게 유태인 학생들은 summer camp를 통해서 유태인이 된다. 


물론 모든 유태인 학생들이 그런 과정을 거치지는 않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월등히 많은 숫자가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예전에 아내와 같이 홍콩 시내 관광을 한 적이 있다. 관광 버스를 타고 단체로 돌아 다니는데, 옆 자리에 앉은 한국인 부모와 딸의 이야기가 내게는 안쓰러웠다. 아버지는 영어를 못하고, 어려서 해외로 보낸 딸은 국어를 못했다. 엄마는 띄엄띄엄이지만, 조금 영어를 하고. 그래서 아빠와 딸은 엄마를 통해 어렵게 대화를 이어갔다. 딸의 영어 교육에 온 가족이 시간과 돈을 쓴 끝에 마음만 가족인 가족이 된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면 이런 일을 각오해야 한다. 해외에 사는 한국 학생이 한국인이 된다는 건 그냥 되는 게 아니다. "한국어"가 아니라 "국어"라고 가르치기도 어렵고, 집에서 국어만 써도 아이들은 영어를 배우는 만큼 국어를 잊어버린다. 국어도 안 되는 판에 역사와 문화가 낄 틈을 찾기는 참 어렵다. 


개인이 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니, 대한민국이 해 주면 좋으련만. 우리 후손들도 여름 방학때 한국인이 되어갈 기회가 주어지면 좋으련만. 여름 방학 때 영어만 배우려고 하지 말고 한국을 체계있게 배우는 기회로 삼으면 좋으련만.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중국인들을, 우리나라 학생들이 영어로 또박또박 반박해 주면 좋으련만.


안다. 지금은 그냥 바램일 수 밖에 없다는 거. 그래도 아직 나는 지치지 않았으니 내 아이들이라도 좀 더 다독여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이냐 종이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