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광훈 Apr 14. 2023

For here or to go

네 명은 여기서 먹고 두 명은 가져가서 먹어

캐나다에서 (미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음식을 주문하면 흔히 이렇게 물어본다.


"For here or to go?"


가게에서 먹을 거냐, 포장해서 가지고 갈 거냐? 라는 뜻이다. 


하지만, 영어권에 갓 떨어진 상태라면, 그리고 평소에 영어 드라마에서 이런 표현을 접한 적이 없다면 (난 없었다), 흔히 겪게되는 낯설고 당황스러운 첫 경험 중 하나가 이 질문이다. For here or to go?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훠히어오투고..라고 들리는데 대체 무슨 뜻인지.


실제로 한인 유학생 6명이 햄버거 집에 가서 주문을 했는데, 이 말을 "네 명까지는 여기서 먹을 수 있고, 두 명은 나가서 먹어야 돼" 라고 이해해서 (four here, two go) 주문 안 하고 나왔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니, for here or to go 라는 말을 듣고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하는 건 부끄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한 번도 못 들어본 속어이니 못 알아 듣는 것이 당연하다. 


내 차에 달린 차량용 navigator는 미국 회사가 만든 제품이다. 운전 중에 손을 쓰지 않고 음성으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안내는 국어로도 해 주지만, 지시는 영어로만 해야 한다. 


짐작하겠지만, 이 음성 조작은 보기에는 편리해 보여도 내게는 애물단지였다. 내 발음을 잘 못알아 들었다. 요즘은 그래도 성공률이 꽤 높은 편이지만, 그래도 아들과 딸의 비웃음을 피하기는 어렵다. 내가 불러주는 주소는 잘 알아듣지 못하고, 심지어는 exit이라는 간단한 단어도 내가 발음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별 문제 아니다. 차 출발하기 전에 입력하고 출발하면 되고, 차 세우고 변경하면 된다. 운전이 서툰 아이들에게는 고속도로에서 차 세우고 navigator 만지는 것이 번거롭고 무서운 일일지 모르나, 내게는 전혀 아니다. 아이들은 운전을 잘 못하고, 나는 발음이 좀 안 좋다. 그 뿐이다. Navigotor는 내 도구이지 내 상사가 아니다. 

그러니, navigotor가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역시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처음 캐나다에 왔던 때를 생각해 보면, 그 사이에 내 영어가 좋아진 건 확실하다. 처음에는 Low 와 Law로 구별해서 발음하지  못했으니까. 로스쿨 수업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던 상태에서 변호사일을 할 정도가 되었으면, 뭐 영어 실력은 많이 향상된 거 아닌가 말이다. 캐나다에 와서 건진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나와 가족의 영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나. 가끔 아들이나 딸이 "국어라서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괜찮다. 아이들이 국어 단어를 모르는 건 캐나다에서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국어라서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For here or to go?라는 표현은 익히면 그만이고 금방 익히게 된다. Navigotor 가 내 발음을 못 알아들어도, 결국 시간 문제다. 내 수입원이 캐나다에 있는 한, 내 발음은 매일 더 나아지고, navigotor는 내 발음에 매 번 더 익숙해진다. 


하지만, 국어는 아니다. 아이들의 국어는 지금에서 더 좋아지기는 어렵다. 앞으로 사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국어를 쓸 일은 더 없어진다. 나와 아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전문직을 아이들이 가지게 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아이들의 국어를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에 기대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유학생들과 어울려 배우는 국어에 기대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다. 


지금 못 해도 괜찮다. 앞으로 나아질 일이라면, 앞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이라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나빠지기만 할 일이라면 지금 신경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조금 있다. 내 아들, 딸의 국어는 그들의 주장처럼 꽤 훌륭하고, 내가 테스트처럼 던져주는 국어 문제에 발끈하며 그 정도는 다 안다고 건방을 떨지만, 국어로만 생각하고 국어로만 내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아빠의 성에는 차지 않는다. 


국어를 못하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닐지 몰라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한 개(영어)를 온전히 얻고 반 개 (국어)를 잃었으니, 손해는 아닌 걸까. 나가서 아이들 교육을 시키려면 피할 수 없는 손익계산서 두드리기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태인은 여름방학 때 만들어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