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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Feb 13. 2023

나는 아직도 파란 눈이 무섭다

캐나다에서 애들 교육 시키면 덤으로 따라오는 잇점 하나

나는 어려서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다. 한글을 떼고 나서는 중학교에 들어갈 때 까지는 항상 누워서 책을 들고 읽다가 책을 얼굴에 덮고 잠드는 날이 대부분이라, 외할머니께서 책을 치워 주시곤 했었다. 


요즘은 한국 창작 소설도 유명한 것이 많지만, 그 때는 동화든 소설이든 외국 것이 많았는데, 그 때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이 파란 눈, 혹은 푸른 눈에 대한 것이었다. 눈동자는 까만 색이어야 하고 (사실은 짙은 갈색이라고 하는데), 머리카락도 까만 색이어야 하는데, 눈동자는 파란 색이고 머리카락은 금발이라니. 파란 눈에 대한 설명은 항상 아름다운 상황에서만 펼쳐지기에 (예를 들어 연애 중이라든가) 파란 눈이 참 예쁜가보다 생각했었다. 언젠간 볼 수 있으려나, 기대도 했었다.


나중에 회사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외국인을 보았는데, 실망스럽게도 파란 눈이 아니었다. 서양인 중에도 파란 눈이 흔하지 않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내가 열심히 서울 도봉구 내 집에서 경기도 평택 소재 연구소까지 매일 6시간 이상을 허비해 가며 회사 생황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근무하던 연구소에 몸집이 작은 독일 여대생이 연수를 왔다. 나와 같은 부서가 아니라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환영회 때 보니, 어? 오래 기다리던 파란 눈이었다. 


그런데, 파란 눈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서웠다. 


체구도 나보다 작고, 얼굴도 미인형이고, 말투도 상냥했지만, 파란 눈이 무서웠다. 눈은 까매야 하는 것이었다. 파란 눈동자는 그 자체로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내게는 너무 이질적인 것이라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겁이 먼저 났다. 


로스쿨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영어 읽기가 느릴 수 밖에 없는 나는, 보통 로스쿨 도서관을 열고 들어가서 닫고 나오는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어느 날 도서관 끝날 시간이 되어 주위를 보니, 나를 포함해서 두 명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예쁘장하게 생긴 한 흑인 여학생이 앉아 있다가 가방을 싸면서 주위를 보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캐나다는 얼굴이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끼리도 인사를 하는 게 보통이니, 그 여학생이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까만 얼굴에 하얀 눈, 하얀 치아. 그리고 예쁜 웃음.


순간 소름이 쫘악 끼치면서 겁이났다. 도망가고 싶었다. 그 동안은 공부에 치어서, 주위에 워낙 많아서, 잘 몰랐는데, 피부색은 살색이어야 하는 것이었다. 까만 피부 색을 인지하는 순간, 내가 남자라는 것이 창피할 정도로 겁이 확 났다. 캐나다에서 오래 사신 어떤 분은 오히려 한국에 가서 모두가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인 것을 보면 가끔 무섭다고 하시지만, 난 아직 아니었다. 


동일함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어울려야 하는 사람이 다양한데, 무서워서 어울릴 수 없다면 얼마나 큰 손해인가 말이다. 내 아들이나 딸은 다행히도 그런 불리함이 없다. 피부색이 희던 검던, 눈동자가 까맣던 파랗던 신경쓰지 않는다. 다행이다. 


다양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큰 자산이다. 눈으로 보이는 차이를 포용할 수 있어야, 다른 시각, 다른 아이디어를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다면 내 주위를 덜 경직되게 만들 수 있으니 더 좋은 리더가 된다. 


이런 자산을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학원다니면서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학교만 보내면 얻을 수 있다니. 속된 말로 개이득이 아닐 수 없다. 캐나다에서 애들 교육 시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건 어려서 배워야 한다. 나는 아직도 파란 눈이 무섭다.


이제 캐나다 생활 10년차가 넘은 우리 아이들은 물론이고, 우리 집에서 1-2년씩 머무르며 소위 조기 유학을 하고 돌아간 아이들은, 한국에 돌아갈 때에는 적어도 파란 눈에 대한 두려움은 다 극복하고 돌아갔다. 그게 얼마나 큰 이익이고 매력인지는 본인들도, 부모들도 아마 지금은 알지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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