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광훈 Feb 05. 2023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주입식 학습 이 문제다.

한국 교육을 위한 변명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 계속 한국의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라서 문제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요즘도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 논의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가 바로 '주입식 교육'이다. 일단 나는 주입식으로 공부한 것이 맞으니 예전에는 그 말이 맞으려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한다. 대한민국 교육은 정말 주입식 교육이라서 문제인가?


내 초등학교 동창 중에는 고 3때에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한 녀석과, 고 3때에도 이성 친구를 사귀면서 테니스까지 아마추어 선수급으로 치던 녀석이 있었다. 4당 5락이라고, 4시간 이상 잠을 자면 대학을 갈 수 없다고 하던 그 시절에, 나는 잠자고 책 보기에도 바빴던 그 때에, 악기라니. 연애라니. 스포츠라니. 


나는 주입하고, 주입하고, 또 주입하면서 공부하던 그 시간에 연애질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운동을 했던 그 놈들은, 그렇게 설렁설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놈은 서울대 법대를, 한 놈은 서울대 의대를 갔다. 정말 그 녀석들에게도 대한민국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암기와 주입만으로는 그런 결과를 낼 수 없었을거다. 그 녀석들은 배운 걸 다 이해했기에, 연애질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운동을 하면서도 시험 성적은 좋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주입식으로 공부한 것은 틀립없다. 하지만, 그건 내가 선택한 학습 방법이지 교육 자체가 주입식인 것은 아니지 않을까. 


만일 내 생각이 맞다면, 그렇다면 대한민국 교육은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캐나다는 어떨까?


캐나다에 와서도 당연히 한국의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라서 나쁘다고 생각하고 살았더랬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한국 아이들과 크게 다른 한 가지 차이를 알게 되었다. 


캐나다 학생들에게는 절박함이 없었다. 


내가 처음에 캐나다에 올 때에 주위에 캐나다로 자녀들을 유학 보내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셨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 두 명이 우리 집에 머물렀는데, 일종의 도피 유학이었다. 한국에서도 도피를 해야 하는데, 캐나다에서 영어도 안 되는 고등학교 2학년 두 명이 자리를 잡으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부모님들의 소원은 그 아이들이 캐나다에서 번듯한 대학에 가는 것이었으나, 나는 그게 가능할까, 고등학교를 4-5년 걸려 졸업하더라도 영어만 좀 익혀서 한국에 가면 그 정도도 성공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 일에 정말 열심이었다. 안 되는 영어로 고등학교 선생님을 매일같이 만나가며 아이들 수업 과목을 선택해 주고 (캐나다는 고등학교도 선택과목이 대부분이다), 과외도 시키고, 스펙을 쌓기 위한 활동도 본인이 알아보고 아이들을 보냈다. 지금도 우리 아들과 딸이 엄마 아빠에게 서운해 하는 건, 본인들이 아직 많이 어린 그 때에 엄마 아빠가 본인들보다 그 언니/누나를 더 챙기느라고 본인들은 뒷전이었다는 것이니, 열심이긴 열심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아이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2년만에, 대학 순위로는 서울대보다 항상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한국에도 아주 잘 알려진 캐나다의 이름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늦게 온 도피 유학 치고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그건 주입식 학습의 힘이다. 


이해를 하는 학습이 암기를 하는 학습보다 좋다는 건 더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 나의 시험 성적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입하고 암기하는 수 밖에는 없다. 그런데, 캐나다 학생들은 성적에 절박함이 없다. 암기하고 주입해 가면서 성적을 올리려고 하지 않는다. 


캐나다처럼 다른 학생들이 암기하고 주입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누군가의 주입식 학습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다른 학생들을 추월할 수 있는 충분한 요건이 된다. 도피 유학을 온 두 고등학생도 주입식 학습으로 성적의 차이와 영어의 차이를 메꾸어 냈다. 


그러니 캐나다처럼 교육은 주입식이 아닌 곳에서도 주입식 학습은 가능하다. 또,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그런데, 만일 주입식 학습이 그렇게나 효과적이라면, 왜 캐나다 학생들은 주입식 학습을 하지 않을까? 왜 절박하지 않을까?


그건 캐나다라는 인구에 비해 나라가 워낙 풍족하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나무가 많다. 그래서 동쪽 끝에서부터 서쪽까지 나무만 베어서 수출해도, 전 국민들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100년간 놀고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100년이 끝이 아니다. 100년 후에는 다시 동쪽 끝에 100년된 나무가 있지 않은가. 그걸 또 베어 팔면 된다. 그러니, 국민들이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는다.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절박함이 있을 리 만무다.


대한민국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배우지 않는가 - 우리가 가진 건 사람 뿐이라고. 가진 자원이 제한적이니 나눌 떡도 작다. 그러니, 무리해서 내 능력이 닿지 않는 곳에 도달하지 않으면 떡 한 조각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니, 답은 하나다 - 주입식 학습. 


자원이 제한된 곳에서는, 교육이 주입식이든 아니든 나는 주입식으로 학습을 해야 한다. 그게 내 한계를 벗어나는 지름길이고, 아마도 유일한 길이다.  


모든 학생들이 예외없이 주입식 학습으로 능력 밖의 것을 탐하는 곳 대한민국에서, 교육 시스템은 주입식이 아니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주입식으로 학습할 의지가 없는 곳이라야 주입식 교육이 자리잡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의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라서 문제야"라는 생각을 주입받고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진짜 문제는 주입식 학습을 통해서라도 능력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아, 능력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능력보다 더 좋은 떡을 차지하려는 우리의 욕심, 그것임에도. 대한민국이 가진 자원이 없다는 서글픈 현실, 그 자체임에도. 

매거진의 이전글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해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