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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20. 2023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해고?

Predictability에 대한 교육

내가 한국에서 일하던 다국적 기업의 영업이사께서는 한국 회사에 근무하던 분이셨다. 산간 시골마을까지 전국에 빈틈없이 뻗어 있는 영업망의 모든 직원은 한국인이었으니, 이 영업망을 관리하려면 서양식 사고보다는 한국식 사고가 더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듯 하다. 실제로 다른 나라의 사례도 보면 마케팅이나 연구소같은 부분은 외국인 관리자를 두더라도 영업부는 현지인을 임원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IMF에 금융 지원을 받게 된 다음 해였다. 당연히 시장은 어려웠고, 그보다도 수금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했다. 매년 매출액을 높여잡으라 종용하던 독일 본사에서도 매출 목표를 강제하지 않아서 목표 대비 매출은 어찌어찌 좇아가던 중이었지만, 연말까지 수금이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였다. 


영업부는 수금 전망을 매달 발표하게 되었다. 당연히 영업부 이사께서 매달 발표하시는 수금 전망도 좋지 않았다. 그러니, 회사 분위기도 좋지 않아 모든 예산이 삭감되고, 비용 지출에 대한 지침이 꼼꼼해졌다. 하반기에는 더 심해졌다. 모든 영업부 직원들이 수금에 총력을 다했지만, 11월까지만 해도 영엄부 이사가 발표하는 수금 전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모든 부서가 금전적으로 참 쪼들린 한 해를 버티고, 서로 잘 버텼다고 격려해 주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12월 실적을 발표하는데, 영업부에서 11월에 발표한 최종 수금 목표보다 40%이상 초과 달성을 한 거다. 


영업부는 축제 분위기였다. 영업 본부를 포함해서 각 지방의 지점까지 어려운 상황에서 잘 해냈다는 자부심이 충만했다. 그런데 그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전해졌다. 


영업부 목표 초과 달성으로 인해 영업 이사가 경질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제 무슨 소리지? 다들 의아해했다. 어려운 시기에 좋은 결과를 냈는데 경질이라니. 


내막을 알고 보니, 일반적인 한국의 회사에서는 그 때까지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Predictibility, 예측 가능성에 대한 사고 차이 때문이었다. 나도 그 때에서야 다국적 기업들이 predictibility 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를 알았다. 


만일 얼마나 수금이 될 지를 보다 정확히 알았다면, 회사는 그렇게 쪼들리게 살림을 할 필요가 없었고, 내년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마케팅에 쓸 수 있었고, 더 많은 예산을 제품 개발에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활동이 수금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영업부의 능력부족 (어쩌면 미수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을 가능성이 더 컸지만) 으로 인해서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로인한 회사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predictibility가 떨어지는 조직은 장기적으로 영속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그 영업 이사를 계속 고용하는 것을 회사의 존속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자체는 좋은 것이자만, 계획과 10%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는 건 능력부족이란다. 그리고, 혹시라도 계획을 줄여서 결과를 부풀린 것이라면 그런 관행은 투명성을 떨어지게 한단다. 


그런 철학을 가진 회사에 11월까지도 12월 결산과 40% 이상이나 차이나는 예측을 내 놓았으니, 해고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연했다. 


사실 한국 직원들도 처음에 수금 결과를 듣고는 아, 영업부에서 나중에 목표 달성을 못 했다는 추궁을 피하기 위해 목표를 줄여서 중간 보고를 했나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그거야 뭐 흔한 일이니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하지만, 이 독일 회사는 그것을 심각한 능력 부족 (predictibility의 부족)으로 보고 영업 이사의 해고까지 고려한 것이었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한국 회사와 예측 가능한 결과를 중요시하는 독일 회사의 차이를 크게 느꼈던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 영업 이사는 경질은 되지 않았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운영진들이 지녀야 할 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predictibility라는 철학을 부서별로 교육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키워보니 캐나다에서도 알게 모르게 어려서부터 '가장 좋은 결과'가 아니라 '예측가능한 결과' 가 중요함을 가르친다. 예측을 하게 하고, 예측한 결과와 비슷한 성취를 나오는 것을 장려한다.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면, 미달이든 초과던 좋은 것이 아니었다. 과정을 정확히 예측하고 낮은 결과를 낸 경우에는 평가가 좋았다. 아마도 독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양 교육이 그런 듯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최고의 성취를 좋은 것이라고 배웠지, 예측가능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배운 기억이 없다. 잘했다는 말은 결과를 보고 하는 것이지 과정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한국 아빠의 입장에서는 캐나다 교육이 사실 답답한 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참는다. 결국 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predictibility가 중요한 조직에서 일하게 될 것 아닌가. 그리고 아마도 그 때 쯤이면 한국도 predictibility 가 많이 중요해져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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