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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13. 2023

꽃으로는 때려도 되지 않을까요?

아들과 딸을 캐나다에 뺏길 뻔한 기억

어느 날, 로스쿨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을 향하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집에 와야 한단다. 교육감이 우리 부부와 아이들을 면담하러 온다는 것이다. 서둘러 집에 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렇다.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가능하면 영어를 쓰라고 지도하고 있었다. 캐나다는 다문화를 존중하고 또 장려하는 곳이라 영어를 강제하지는 않지만,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끼리 모여서 자기들 언어로만 이야기하면 영어가 늘지 않기 때문에 새로 온 학생들은 그렇게 지도한다고 했다. 


강요가 아닌 장려였지만, 그래도 아직 선생님을 캐나다 학생들처럼 "친구"가 아니라 한국식 "선생님"으로 보던 아들내미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선생님 시야권에서는 영어를 써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었고, 그건 영어가 서툰 다른 한국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는 한국인이 많지 않은 곳이었는데 아들 학년과 그 아래 학년에 한국 학생들이 총 3명 있었다. 다들 영어가 불편하니 쉬는 시간에는 끼리끼리 모여 국어로 회포를 풀곤 했는데, 마침 그 날은 서로 자기 자랑질을 하고 있었다 - 본인들이 집에서 얼마나 많이 맞는지. 


나도 그게 뭔지 안다. 나도 어려서 반 친구들과 누가누가 더 많이 맞고 사는지 자랑질을 했었다. 한 놈이 나는 시험 문제 틀릴 때마다 손바닥을 회초리로 맞아, 이러면, 다른 한 놈이 야, 회초리가 맞는거냐, 나는 엄마 빗으로 두들겨 맞아, 그거 얼마나 아픈지 알어, 이러면 또 다른 놈은 야, 나는 빗자루로 맞아 라고 한다. 그렇게 지지 않기 위해 과장하고 또 과장하다보면 나중에는 다들 야구방망이로 집에서 맞고 있고 아버지가 들어서 땅에다 메다 꽂는 상황이 매일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우리끼리는 안다 - 그게 거짓이라는 걸.


근데, 그 때 선생님이 근처를 지나가셨다. 선생님이 지나가시니 이 녀석들은 그 험한 대화를 영어로 시작한 거다. 그것도 안 되는 영어로. 그러니 대화에서는 "bat" "broom" "hit" "everyday" 뭐 이런 말이 반복되었다. 


캐나다는 체벌의 기준이 매우 빡빡하다. 체벌이라는 개념 차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체벌은 곧 학대로 본다. 체벌에 따르는 댓가도 어마어마하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집에서 매를 맞는 정황이 포착되면 바로 교육청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니, "bat" "broom" "hit" "everyday" 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포착한 선생님은 부모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교육청에 신고를 한 거다.


주위에 자문을 구했더니, 비슷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캐나다 정부가 아이들을 빼앗아 가는 경우가 많았단다. 실제로 검색한 기사에서는 억울함을 토로하는 한인 부모들의 이야기를 쉽게 검색할 수 있었고, 그렇게 빼앗긴 아이들은 캐나다인으로 키워져서 거의 남남으로 살게 된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아들과 딸도 어쩌면 엄마, 아빠와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교육감이 왔다. 보고를 받은 당일 저녁에 교육감이 오다니. 아이들 보호가 중요한 나라라는 건 실감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듣던 것처럼 무자비하거나 빡빡하지 않았다. 한국의 교육 방침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 사람이었고, 딸이 한국에 영어 교사로도 일하다 왔다고 했다. 


선생님이 보고한 상황도 과장이라는 걸 아는 듯 했다. 우리 집에는 야구방망이도 없고 빗자루도 없었으니 말이다. 진공청소기로 때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물론 엄마 빗으로 손바닥을 맞는 일은 실제로 있던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들을 빼앗기지는 않았으나, 아이들에게 벌을 주려면 방이나 지하실에 감금하는 정도가 허용되고 체벌은 허용되지 않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만일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면 이렇게 상담으로 끝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매 없는 교육을 나는 아직 상상할 수 없었으나 아이들을 빼앗아 간다니 반항하지 않고 참았다. 알겠다고 했다. 


그럼, 체벌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나중에 학교에 가서 판례를 찾아보니 spank 한 번은 허용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있었다. 그러니까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한 번 팡하고 치는 것이 캐나다 체벌의 한계다. 불문법의 나라답게, 별 게 다 판례법으로 되어 있었다. 이러다보면 나중에는 가시가 있는 장미꽃으로 때리면 안 되고 국화로는 때려도 된다는 판례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 아이들은 사실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맞는 것보다, 방과 지하실에 가두는 것을 무서워했다. 맞아도 울지 않았지만 지하실에 가둔다고 말하는 순간 무서워서 운 적도 여러 번이다. 난 지금도 그런 캐나다의 방식이 한국식 체벌보다 더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신에 가해를 하는 것보다 육체에 가해를 하는 것이 낫다 - 둘 다 정도의 문제이고 벌 주는 이유 (아이들을 위해서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닐까. 


어쨌든 법은 법이니 그 날 이후로 나는 아이들을 때린 적은 없다. 하지만 아쉽다. 체벌이 허용되었다면 아들도 딸도 더 성취가 컸을 거라는 미련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한국에서 맞고 자란 내 경험때문이겠다. 


그러니 꽃으로는 때릴 수 있게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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