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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05. 2023

역전할 수 있는 기회의 가치

역전의 용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

로스쿨 2년 후배 중에 고등학교 3학년을 기점으로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녀석이 있다. 


이 녀석은 부모님 여건상 어려서부터 한국와 캐나다를 1-2년씩 오가면서 생활했다. 그래서 영어는 전혀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영어를 익힌 것은 좋았으나, 여건이 안정이 되지 않은 탓에 공부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에 가면 꼭 만나는 절친들 중에는 클럽 기도 출신들도 여럿 있다고 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안정환 선수가 골을 넣은 밤에는 이탈리아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 사이의 패싸움을 주동해서 경찰서에 끌려가고, 운전 면허도 없이 아버지 차를 몰래 가지고 나가서 운전하다가 큰 사고를 내는 등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으로 말하면 거의 비행청소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성적표를 받아 온 날도 그 형편없는 성적에 어머니께서는 대노하셨고, 욕조에 아들을 처 넣고는 두들겨 패시기 시작했단다. 반항하지는 않았지만, 맞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 아, 오늘 이 여자가 나를 죽이겠구나.   


그 날을 계기로 그 녀석은 맞아 죽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해 보기로 했는데, 3학년 1학기 성적이 매우 우수하게 나왔다. 1,2 학년 성적이 나쁜데 어떻게 3학년 성적이 좋을 수 있는지 의아하겠지만, 캐나다는 1,2학년 과목과 연계되는 지식 없이도 들을 수 있는 3학년 과목을 많이 제공하고 대부분은 선택 과목이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캐나다는 3학년 1학기 성적만을 바탕으로 하여 대학을 지원하기 때문에, 3학년 성적이 좋으면 1, 2 학년 성적이 나쁜 것에 관계없이 대부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3학년 1학기 성적을 잘 받았으니 나름 좋은 대학을 갔고, 대학에서도 공부에 재미를 붙여 성적을 잘 받아 대학 졸업 후에 Osgoode Hall Law School에 합격을 한 뒤, 로스쿨 1학년 1학기 성적을 잘 받은 사람만 갈 수 있는 Law School - MBA 연계 프로그램에 합격하고, 4년만에 로스쿨 졸업장과 MBA 졸업장을 동시에 획득했다. 


그 연계 프로그램은 연봉도 높아서 그 녀석은 로스쿨 학생 신분으로 여름 방학 동안 은행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기에, 내가 사법 연수생으로 받던 월급보다도 높은 급여를 받았다. 지금은 7 sisteres로 불리는 토론토의 대형 로펌 중 한 군데에서 파트너 변호사를 향해 달리는 중이다. 비행청소년에서 이 정도 경력을 갖추었으면 인생역전에 가깝지 않은가.


그 녀석이 말하기를 고등 교육을 한국에서 받았더라면 본인이 아무리 열심히 했더라도 이런 수준의 역전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워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한 번 뒤쳐지기 시작하면 따라잡기가 정말 어렵다. 모두가 열심히 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평가 기준이 성적 하나이고, 과거 성적이 나쁜데 이후 성적이 좋기도 어려운 교과 과정이고, 모두가 배우는 것도 비슷해서 더욱 그렇다.  


평가 기준을 일률적이고 단일하게 만드는 것은 공정성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대신 한 번 뒤쳐지면 역전의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아, 한 번 뒤쳐진 아이들에게는 동기 부여를 하기 어렵고,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는 인적 자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나오면 보통 악기 하나, 운동 하나 정도는 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체능이나 학외 활동에 쓰는 시간이 낭비가 되지 않고 평가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대입 시스템 덕분이다.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성적에 신경을 덜 쓰게 하거나, 신경써야 할 성적의 수를 줄여주는 평가 방식 덕분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캐나다 고등학교는 학업 수준이 높지 않다. 


캐나다의 교과 과정은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비교해도 1년은 뒤떨어져 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역전의 기회가 더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부족한 부분은 대학교에 가서 빡세게 따라잡는다.  


전체적으로 고등학교의 학업 기준이 낮으니, 학업 외의 것으로 승부를 한다. 평가 기준을 낮추어 놓으니, 굳이 학업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고, 여러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자원봉사를 하고, 여행도 가고, 악기를 하는 것으로 이력서를 채운다. 3학년 1학기가 되기 전에만 마음을 고쳐 먹으면 성적으로도 역전의 기회를 노려볼 수 있다. 


물론 한국에도 역전의 스토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석좌교수 중 한 분인 이용환 교수께서는 대학교 3학년까지 술로만 시간을 보내셨다. 그러다 4학년이 된 후, 선배의 충고로 마음을 고쳐먹고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원에 합격하고, 대학원 졸업 후에는 유학을 가고,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하시고 좋은 논문도 쓰시고, 그렇게 서울대 교수가 되셨다. 지금은 식물의 병 발생 기작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교수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 어려움의 정도와 기회의 빈도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성적을 잘 받지 못하던 학생들이 캐나다로 도피 유학을 오는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다. 성적이 나빠 도피 유학을 오고,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공부를 하면서도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캐나다에 역전의 기회가 더 많다는 증거다. 


역전할 수 있는 기회는 나라가 가진 자원 (학생)이 초기에 뒤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도태되는 일을 막아주니, 인재 관리에도 유용하다. 


물론 캐나다에서도 역전의 용사는 흔하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역전의 용사 1명은 곱게 자란 용사 10명 몫을 한다. 


주위의 이름난 리더들,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유명한 과학자들을 보아도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네 교육에도 역전을 장려하는 시스템이 들어와야 한다. 역전할 수 있는 기회는 언젠가 역전의 용사를 배출할 수 있다는 기회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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