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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ul 24. 2023

까다로운 아내, 100점짜리 남편

100점짜리 쇼핑이 주는 절망과 축복

내 아내는, 남자인 내가 보아도 쇼핑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고 쇼핑을 조르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쇼핑을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특히 옷을 파는 매장이나 아웃렛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는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옷에 대해 까다롭지 않다. 들어간 가게에서 몸에 맞는 것이 있으면, 산다. 그것으로 쇼핑은 끝이다. 그런 나에게 아내의 쇼핑법은 상당히 까다로와 보인다. 


그 날도 아웃렛 몰에서 가게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아내 눈에 마음에 드는 옷이 들어왔다. 옷이 참 이쁘네, 하고 보니, 가격도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 가게가 할인이래! 그래서 이렇게 싼가봐! 그러니 난 당연히 이렇게 생각했다. '느낌이 좋다, 오늘은 쇼핑이 빨리 끝나려나보다, 이제 옷만 어울리면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매장에 들어가서 옷을 입어 보았는데... 옷도 잘 어울린다. 


만족한 아내가 점원에게 묻는다. "이 가격이 할인된 가격인가요?" 그랬더니, 점원이 대답한다. "아, 그 제품은 할인 품목이 아니예요, 고객님". 난 생각했다. 할인이든 아니든 가격 알고 들어왔고, 싸서 들어왔으니, 그게 뭔 상관이람. 그리고 결재를 위해 지갑을 꺼냈다. 


선택은 아내가, 결재는 남편이 - 동서고금을 막론한 불문율 아닌가.


그런데, 아내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돌아선다. 대체 왜? 할인을 해 준 가격인 줄 알았는데, 그게 할인가가 아니라 정가라서 사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이미 알고 있던 가격인데, 그게 할인가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내는 마음까지 만족하는 (할인해서 싸게 샀다는마음의 평안을 주는) 쇼핑을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다보니 100% 만족스러운 쇼핑이 아니었던 것이고, 그렇다면 그건 쇼핑할 물건이 아닌 것이었다. 


100%가 만족되지 않으면 과감하게 돌아서는 쇼핑. 


내가 값을 치르는 물건이 내 물질적 필요를 채워 줄 뿐 아니라 내 마음의 기대까지 충족시켜야 하는 쇼핑. 그것이 내 아내의 쇼핑법이다. 99% 조건이 충족되어도 1%가 안 맞으면 돌아선다. 내 기대는 그렇게 깨지고, 난 절망했고, 그 날도 다리가 풀릴 때까지 걸었다. 


결혼 후 오랫동안 나는 아내의 그런 100점 만점을 노리는 쇼핑법에 익숙해 질 수 없었다. 그러니 몸도 힘들지만 옷 쇼핑은 먼저 마음이 힘들곤 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정도 밖에 안 하는 쇼핑, 맞춰줄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은 후, 내 마음은 180도 바뀌었다. 내 아내가 쇼핑한 것 중 가장 큰 물건은, 생각해 보면 남편인 나 아니겠는가 말이다. 옷을 쇼핑해도 100% 만족해야 하고 100점짜리 물건을 고르는 아내가, 남편은 좀 까다롭게 골랐겠는가 말이다.


그렇게나 까다로운 아내에게 간택을 받았다는 것은 자랑할거리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내의 쇼핑법이 이뻐 보인다. 내가 적어도 과거에는 한 때 내 아내에게 100점짜리였음을 보여줄 증빙으로 삼으니, 옷 쇼핑이 힘들지 않다. 


넓어지면 바다도 담을 수 있지만, 좁아지면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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