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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Dec 04. 2023

꽃이 진 자리에는 가지를 내라

중년의 성공 방정식

캐나다에는 한국처럼 화려한 화환을 꾸며주는 꽃가게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개업 선물로 꽃을 준비할 때에는 많은 경우 서양란인 호접란을 선물한다. 이 꽃은 예쁘기도 하지만, 특별한 관리 없이도 한 두달은 거뜬히 생생하게 살아서 보기도 좋고 마음도 편하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게다가 호접란의 꽃말이 ‘행복이 날아옵니다’라고 하니, 눈으로 즐기는 용도로서나 마음을 전하는 용도로서나 개업 선물로 손색이 없다.  


내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을 때에도 보기 좋은 색색의 서양란이 많이 들어왔다. 두 달 가까이 사무실을 밝혀주던 녀석들인데, 비록 화무십일홍은 넘어섰으나 지지 않는 꽃은 없는지라 결국 잎과 꽃대만 남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동양란처럼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지면 화분 째로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근처 화원에 다시 꽃대가 올라올까요? 라고 물어보니 "가능은 하지만 어렵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참 예쁜 호접란의 마지막 꽃이 떨어져서 아쉬워하며 또 버리려는 때에, 호접란도 잘 관리하면 다시 꽃을 피운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접했다.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시도해보기로 했다. 


물 관리와 함께 온도 관리가 필요했다. 사무실에 에어콘과 온풍기가 가동이 되니 힘 닿는대로 관리해 주었지만, 별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희망없이 그저 습관적인 물 관리, 온도 관리를 하던 어느 날, 직원 한 명이 알려준다 - 어, 꽃대가 새로 나왔어요!


반가와서 살펴보니 과연 그랬다. 꽃이 진 자리 중 한 군데에서 새로운 꽃대가 나왔다. 그리고, 계속 관리를 했더니 마침내 처음 보여준 것 같은 탐스럽고 예쁜 꽃을 줄기 가득 피워냈다. 



누구나 ‘중년’ 혹은 '노년'이라 불릴 나이가 되면 거창하지는 않아도 작은 무용담 한 두개 정도 없는 사람은 없다. 그 시기가 빠르면 30이요, 늦으면 60일지라도 누구에게나 가슴 벌려 이야기할 무용담 하나쯤은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내 이야기를 쓰면 책 한 권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그 무용담은 그 분들의 꽃이요, 나의 꽃이다. 그래서 문제다. 오래가는 무용담도 있고, 짧게 기억되는 무용담도 있지만, 아쉽게도 무용담은 시간이 지나면 그저 과거의 한 파편이 된다. 꽃이 지듯이 무용담도 진다. 무용담이 지고나면, 그도, 나도, 꽃 없이 그저 시든 가지로 남는다. 


누가 시든 가지로 남고 싶겠는가. 그래서 다들 한 번 더 꽃을 피우려고 한다. 꽃이 진 자리에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꽃을 피우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는 꽃망울을 맺을 수도, 꽃을 피울 수도 없다. 꽃을 새로 피우려면, 꽃이 진 자리에 새로이 가지를 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호접란처럼 말이다.


옆에서 아직 꽃을 가지 가득 담고 있는 다른 호접란이 비웃을지라도, 호접란은 꽃이 진 자리에 꽃을 달려고 하지 않고, 조급해 하지도 않고, 그저 참을성있게 준비하고서는 꽃대를 먼저 다소곳이 올려세운다. 그걸로 반은 성공이다. 꽃대를 올리기가 어렵지, 한 번 꽃대를 올리면 그 끝에는 꽃이 여러 송이 또 달리는 일만 남았다. 


그것이 두 번째 꽃을 피우는 방법이고, 그것이 중년의 성공 방정식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꽃을 피웠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 꽃을 달아보려고 한다. 꽃대를 새로 올리는 시간과 노력은 외면한다. 남들은 꽃을 피우고 있는데, 이제서야 다시 꽃대부터 올리는 것을 창피해한다. 그래서, 결국 꽃은 피지 않고, 무용담은 그저 흘러간 기억이 된다. 


꽃대가 올라오는 한, 그 난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형이다. 꽃이 보이지 않아도 현재형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꽃이 진 다리에는 다시 같은 꽃이 피지 않는다. 창피해도 꽃대를 올리려고 노력하다보면, 꽃대는 다시 올라온다. 그러면 다시 꽃이 피고, 그제서야 다시 무용담거리가 또 생긴다. 물론 이 역시 "가능은 하지만 어렵다". 호접란도 두 번 피기 어려우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을 다시 피우는 유일한 길이다. 의심이 되더라도 꾸준히 관리하고 가꾸다보면 언젠가 '아, 꽃대가 또 나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꽃이 진 자리에는 가지를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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