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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Dec 06. 2022

효자, 효녀 키우기

서운해 하지 않는 연습

해외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효'와 같은 한국식 개념을 알려주기가 참 어렵다. 


예전에 로펌에서 일 할 때, 입사 동기 한 명이 스키 여행을 다녀왔다. 눈이 많은 캐나다는 겨울에 짧게는 1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 스키 타기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는 일이 흔하다. 그런데, 이 친구가 휴가를 갔다 와서 하는 말이 지난 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음? 이게 무슨 소리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스키를 타다가 지금 돌아왔다는 말은 아닐거고… 하며 물어보니, 그게 맞단다.
 
설명인즉슨 아버지께서 여러 해 동안 병 중에 계셨는데, 이번 스키여행을 갈 때 말씀하셨단다 – 나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 혹시 여행 중에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 때문에 중간에 돌아오지는 말아라 – 라고.
 
그래서 이 놈은 진짜 끝까지 스키를 타다 온 거다. 아버지와 그렇게 얘기가 되었으니까. 장례에도 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아버지와 그렇게 얘기가 되었으니까. 한국에서라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 같은데,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그건 그 쪽 집만의 사정이고, 그 집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설명에, 그럴 수 있다는 반응에, 그게 왜 이상하느냐는 반문에, 할 말이 없었다. 


영어에는 효라는 개념이 없으니, 이걸 효라는 시각에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얼마 전에 딸과 함께 본 드라마가 있는데, 직장을 떠나는 상사의 뒷 모습에 부하 직원이 허리 숙여 마지막 감사의 인사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뒷 모습에 인사를 하니 떠나는 상사는 그의 감사를 알지 못한다. 뒷 모습에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누가 타박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부하직원은 감사의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이 행동으로 나온 것이겠다. 그것이 도리라고 말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겠다. 


그러니, 중요한 건 마음이다. 마음이 없는데 스키를 타면 어떻고, 임종을 지킨다고 한들 무엇하겠나. 


내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유품은 많지 않은데, 그 중 하나가 넥타이다. 캐나로 가지고 와 보니 매듭을 짓는 부분이 다 닳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살아 계실 때 나는 그걸 알지 못했다.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다만 아버지 넥타이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고 애써 항변해 보지만, 궁색한 변경이라는 걸 나도 안다. 넥타이 하나도 챙겨주지 못하는 큰 아들에게 아버지는 서운하셨을까. 


아이들에게 효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내가 본을 보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해외에 나온 자식은 자식이 아니라는 거,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장례 당일에 간신히 도착해서 상주 노릇 몇 시간 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아빠는 하지 못했지만, 너희는 이렇게 하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도 염치가 없다. 


없는 마음이 잔소리를 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생각해보니 부모가 서운해하지 않으면 불효는 아닌 것 아닌가. 아버지께서 서운함을 표현하셔서 나를 불효자로 만들지는 않으셨으니,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제 성인이 된 아들과 딸에게 서운한 일이 있으면, 나는 불평하고 잔소리해서 아이들을 불효자, 불효녀로 만드는 대신, 아버지의 헤진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다. 내게 서운해하지 않으신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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