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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ug 06. 2023

좋은 로스쿨 가고 싶은데 LSAT 점수가 안 나왔어요

길 밖에 서 있는 사람에게 길 묻지 마라 

내가 오타와의 로펌에서 일 할 때 한인회를 통해 어느 어머님이 면담을 요청하셨다. 개인적인 문제라며 회사 밖에서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한인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했는데, 딸이 함께 나왔다. 딸 문제란다. 다행히 나쁜 일에 연루된 건은 아니었다. 


딸이 로스쿨 지원을 위해 로스쿨 입학자격시험 (LSAT)을 2번 보았는데 예상보다 성적이 낮게 나와 고민중이라고 했다. LSAT을 더 봐야 할 것 같은데, LSAT은 2년동안 3번밖에 볼 수 없는 규정이 있었다. 다시 공부를 하자니 올해 지원은 포기하고 내년에나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니 시간이 아깝고, 이번에 한 번 더 보자니 이번에도 성적이 나쁘면 내년까지도 시험을 볼 수 없어 2년을 기다리는 셈이 되니 이것도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LSAT을 바로 한 번 더 보고 이번에 지원을 하는 선택과 LSAT준비를 충분히 한 후 내년에 다시 보고 내년에 지원하는 선택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은 선택지인지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다.  


성적을 물어보니 학점은 평점 3.9정도, LSAT은 두 번 중 잘 나온 것이 153점이란다. 학점에 비해 LSAT이 낮은 건 확실했다. 


본인은 Osgoode Hall Law School (온타리오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law school) 을 가고 싶은데, 본인이  시험을 쳐 본 결과로는 Osgoode Hall Law School에 갈 LSAT 점수는 앞으로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온타리오의 다른 로스쿨이라도 가고 싶은데, 인터넷에 나온 정보로 보아서는 어느 로스쿨도 합격 가능성이 없어 고민이라고도 했다. 다른 주의 로스쿨에도 지원을 할 수는 있지만, 꼭 온타리오 주에 있는 로스쿨에 가고 싶다고 했다 – 왜냐하면 온타리오 로스쿨을 졸업하면 온타리오 주 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 주의 변호사 시험도 응시할 수 있는 데다가, 변호사 합격률도 다른 주에 비해 꽤 높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LSAT 153점으로도 온타리오 주의 로스쿨을 들어간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Ottawa 대학의 로스쿨은 뽑는 인원이 많고 Windsor 대학의 로스쿨은 LSAT 기준도 좀 낮고 학점을 중요하게 보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일단 있는 성적으로 (LSAT 새로 보지 말고) 이 두 로스쿨에 지원하고, 몇몇 타 주에 있는 로스쿨에도 지원한 후 혹시 합격을 하면 어느 곳이든 따지지 말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합격하지 못하면 그 후에 LSAT을 다시 공부해 보라고 했다. 


그 학생은 조금 망설였다. LSAT 성적상 이번에는 어차피 안 될 것 같은데, 지원서 준비할 시간에 LSAT 준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는 좋은 로펌에 가고 싶은데 이름이 없는 학교를 나오면 좋은 로펌에 가기 어렵지 않나요? 저는 온타리오에서 일하고 싶은데 다른 주의 로스쿨을 나와도 되나요?


그래서 내가 경험한 내용을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 그렇게 생각할 필요없다. 우선, LSAT 153점으로 온타리오 로스쿨에 합격한 학생을 내가 알고 있다. 둘째, 캐나다는 학점만 좋으면 로스쿨간 이동이 쉽다. Windor 로스쿨에서 1학년 때 좋은 성적을 받아 Osgoode으로 전학한 1년 후배가 있었다. 그러니, 꼭 명망있는 로스쿨에 가고 싶다면 1학년 때 열심히 공부해서 전학을 하면 된다. 셋째, 여기는 캐나다지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학교 이름에 따라 내 몸 값이 정해지고 내 미래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캐나다는 학점이 더 중요하지 이름 값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물론 로펌의 선호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일하는 로펌은 캐나다에서 첫 손 꼽히는 지적재산권 전문 로펌이지만, 그 수장은 Windor 로스쿨을 나온 여자 변호사이지 토론토 로스쿨이나 Osgoode Hall 로스쿨 출신이 아니다. 넷째, 다른 주에서 로스쿨을 졸업해도 온타리오에서 시험을 보고 온타리오 주 변호사 자격증을 따면 된다. 내 입사 동기 6명 중에서도 한 명은 British Columbia 주에서, 또 한 명은 Alberta 주에서 로스쿨을 나오고 온타리오 로펌으로 입사를 했다. 다섯째, 꼭 좋은 로펌에 가는 것 만이 성공하는 길은 아니다.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원주민 관련법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원주민 관련 연방 정부에 취직한 한 변호사는 아내 직장 문제로 한국에 나가서 원격으로 일하면서도 월급은 물론 체류비까지 지원받으면서 대형 로펌에 취직한 변호사들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자랑하고 다닌다.  


그 학생은 그래서 있는 성적으로 로스쿨에 지원했고, 다행히 온타리오에 있는 로스쿨에 합격했다. 졸업 후에는 원하는 분야에서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다며 그 어머니께서 나중에 연락을 주셨다 (아쉽지만, 그 학생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토익을 공부하던 한 후배가 말했었다. 토익 만점 어떻게 받나요? 라는 질문을 인터넷에 올리면 만점 못 받은 사람들의 답글만 줄줄이 달린다고. 그러니, 거기에는 토익 만점을 받는 길이 없다고.


어디에나 길은 있다. 다만 길을 아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그러니, 가려진 길이 없는지 알고 싶다면 길을 아는 사람을 찾는 것이 먼저다.


명문대 의대 교수셨던 분이 계셨다. 그 분은 아들도 당신과 같은 의사를 만들고 싶었으나 그 아들은 고 3때 그런 정도의 자질은 없었다. 그래서 이 교수님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들을 명문 대학의 농가정학과로 보냈다. 남자가 가정학과라니. 하지만, 그 분은 아들이 1학년을 마친 뒤 그 아들을 생물 관련학과로 전과시킬 수 있었다. 아들이 생물 관련학과를 졸업한 후에는 지방대 의대의 석사 과정에 입학 시키고, 석사 졸업 후에는 본인이 교수로 있는 명문대 의대 박사 과정에 입학시켰고, 아들이 박사 학위를 딴 후에는 마침에 그 명문대의 의대 교수로 (모든 의대 교수가 의사는 아니니까) 취직을 시켰다. 


나는 이 길은 오직 그 의대 교수만 생각해 낼 수 있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들도 어쨌든 중간에 공부하느라 노력을 했겠지만, 길을 아는 아버지를 둔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던 길을 걸었다. 


내가 조언한 학생에게는 내 조언이 의미가 있었지만, 내가 아무리 고민을 한 들 그 아들을 명문대 의대 교수로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가는 길이 넓은 길이고 앞으로 가려는 길도 탄탄대로라면, 그저 길을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지금 길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면 인터넷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닥치는대로 주위에 물어보는 것을 멈춰야 한다. 


길을 걸어 본 사람을 찾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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