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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ul 11. 2023

나는 로스쿨의 금수저가 부럽다

하지만, 금수저가 아니라 다행이다.

로스쿨을 다닐 때에는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 보니 로스쿨에도 소위 금수저가 있다. 돈이 많아 금수저가 아니라, 부모 혹은 조부모가 거물 정치인이거나, 대형 로험의 유명한 변호사라거나 하는 경우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에 연수생으로 취직이 되면, 신분은 변호사 연수생이니 로펌에서는 변호사 다음가는 지위이지만, 다들 물불 안 가릴 준비가 되어 있다. 연수생 중에서 소수만이 1년 후에 변호사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걸 다들 알기 때문이다. 모두가 싫어하는 legal research는 기본이고, 복사든 야근이든 감당할 준비로 충만하다. 나도 그랬고, 예외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캐나다의 7대 로펌이라고 불리는 대형 로펌 중 한 군데서 연수생 생활을 한 2년 후배가 있었다. 7대 로펌이라 그런지 동기들과 인사를 하고 보니 캐나다 고위 정치권 인사들이나 판사, 변호사들의 자제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연수생의 주요 업무는 legal reserach. 과거 판결문을 뒤져 현재의 법정 싸움에 필요한 내용을 찾아내는 지루한 과정이다. 변호사가 되면 가장 좋은 점이 legal research를 직접 할 필요 없이 시키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legal reseach는 지루하다.


Legal research를 하려면 복사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그 때만 해도 예전 법원 판결문 중에는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어서 그랬다. 그런데, 그 금수저 자제들은 자신들이 왜 복사까지 해야 되느냐며, 복사는 사무직 직원에게 시키면 안 되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나 같으면 일 년 후에 변호사로 고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헤 복사가 아니라 청소라도 했을 지도 모른다. 1.5세로 캐나다에 온 내 후배 입장에서, 그들은 금수저다. 캐나다에 뿌리를 굳건히 내린 나무들의 씨앗이고, 앞으로도 이들을 흔들 바람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어떤 자신감이 있기에 연수생 신분으로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역시 금수저는 부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이 일을 하다보니 그들의 자신감이 법에 대한 지식이나, legal research를 하는 skill에 있지는 않더란다. 법을 특별히 잘 아는 것도 아니요, research paper를 그닥 잘 쓰는 것도 아니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네들의 자신감은 본인들의 실력이나 역량이라는 내부적 요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보면 금수저는 부러울 것이 없다. 어쩌면 그들은 뿌리 깊은 나무에 달린 열매처럼 오래오래 흔들리지 않고 떵떵거릴 지 모르지만, 어쩌면 변호사라는 자격만 따 놓고 추후 정치인으로 떵떵거릴 지는 모르지만, 외투를 화려하게 입는 것 보다는 튼튼한 다리와 심장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 나이 정도는 나도 되었으니까. 


과장해서 보면 이 친구들은 수탉인데, 꼬리에 공작 깃을 붙여 공작 행세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 삶도 화려하고 좋을 듯 하다. 하지만, 공작이 아닌 것을 나도 알고 남도 아닌데, 공작들 틈에
끼어 있는 그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금수저가 부럽다. 하지만, 금수저가 아니라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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