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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ug 29. 2023

스터디 그룹에 끼고 싶어!!!

나 혼자 이 공부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캐나다에 왔을 때 한국인이 캐나다 로스쿨을 다닌 수기나 책을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 로스쿨을 다닌 경험은 국어로 된 책이 몇 권 나와 있어서 읽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로스쿨 가면 적어도 1학년때는 무조건 좋은 학생들이 있는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야 하겠구나, 그래야 학교 생활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고 좋은 학점받을 확률도 높아지겠구나.  


대학생 때도 스터디 그룹은 해 본 경험이 있으니, 그렇게 하면 될 터였다. 그래서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누구와 스터디를 할 지 열심히 레이다를 돌렸다. 


하지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에야 다 비슷한 성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니 성격이 맞는 친구들과 만들면 되었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오리엔테이션 기간 중에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도 아마 대학교 학점이나 LSAT 점수로는 밀리지 않았으니 입학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눈에 띄게 영어가 안 되는 것이 확실했다. 내 평생 영어권에서 자란 영어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직접 그런 상황에 놓여 보니 외국인 거래처 사람들과 회의하는 수준의 영어로 비벼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남의 나라 말 (영어)로 된 법전과 판례를 읽고 모임에 참가해야 할 테니 누가 봐도 봐도 내가 끼면 민폐가 될 확률이 높은데, 내가 먼저 누구에게 같이 공부하자고 하기는 어려웠다. 스터디 그룹은 내게 필요한 것이기는 했지만, 정작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제안하자니 염치가 없고 (물론 거절당했을 확률이 더 높지만) 셈 빠른 로스쿨 학생들이 나를 먼저 불러 주지도 않았다. 


어떻게 하나, 고민만 하는데 첫 1주일이 지나니, 수업 시간에 말이 많기도 하고 또 말을 잘 하기도 하던 몇몇은 벌써 자기들끼리 모여 스터디 그룹을 결성했더랬다. 첫 그룹이 생기니 우후죽순처럼 스터디 그룹이 만들어졌다.


그 때의 불안함과 조급함이란. 스터디그룹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관념처럼 매일 아침 생각이 났다. 첫 한 달은 학교에 갈 때마다 이 생각이었다. 


나도 스터디 그룹에 끼고 싶어!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혼자 버텨야 하나, 혼자 이 공부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던 차에 한인학생회에서 주최하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다행히 나처럼 국어가 더 편한 한인 여학생을 한 명 만났다. 캐나다에서 살던 친구라 나 처럼 영어를 불편해 하지는 않아서, 내가 못 알아듣고 이해 못할 때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동기를 한 명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미 같이 공부하는 팀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나서, 한인 학생회에서 모든 한인 신입생들에게 한인 멘토를 1:1로 붙여주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렸지만, 이미 3학년인 멘토를 통해서도 로스쿨 생활에 대한 자문을 받고, 구하기 어려운 족보를 구하고, 시험 요령을 배우는 등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내 멘토 뿐이 아니라 다른 한인 상급생 (물론 나보다 15-20년은 어린)들도 나를 도와주기 위해 열심이었다. 로스쿨의 꽃이라고 하는 로스쿨 저널의 학생 편집장이 한국인이었는데 내가 수업 시간에 제출할 연구 보고서들을 검토해 주었고 (이 친구는 지금 내 로펌에서 함께 근무 중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한인 동기가 나에게 1:1 영어 수업을 해 주기도 했다.  


나는 1학년때 아무런 스터디 그룹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스터디 그룹 없이도 1학년을 살아서 마쳤다.

   

돌이켜보면 나처럼 읽는 시간도 부족한 사람은 오히려 스터디 그룹이 독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스터디 그룹을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추가로 쓸 수 있는 여유는 전혀 없었으니까. 오히려 스터디 그룹 같은 곳에서 내가 뭔가 기여해야 하는 부담이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내가 살아남은 비결이라면 비결일 듯 하다.

  

물론 로스쿨에서 좋은 스터디 그룹을 만들 수 있으면 로스쿨 생활이 편해지는 경우가 꽤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 경우를 여럿 보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해 9시 수업이 항상 부담이던 2년 후배 한국인은 다른 한국인 1명 그리고 중국인 1명과 함께 팀을 만들어서 한 명은 수업을 듣고 필기를 하고 녹음을 하고, 한 명은 그 자료와 족보를 참고로 정리를 하면, 나머지 한 명은 과거 시험에 대한 답안을 만들어 공유했다.  저게 될까… 싶었는데, 셋 다 거의 모든 과목에서 A 를 받아, 1학년을 마친 학생 중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Law School - MBA 공동 과정에 합격했다.  


학업에도 도움이 되지만, 연줄이 특히 중요한 캐나다에서, 1학년 스터디 그룹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나중에 변호사가 된 후에도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스터디 그룹에 참가할 수 있다면 굳이 피할 필요는 없다. 특히 로스쿨 1학년 때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가능한 한 많이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 못한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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