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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Sep 09. 2023

D만 맞으면 돼요.

꿈은 작게, 목표는 낮게

로스쿨 합격이라는 관문은 일단 통과를 했으나, 로스쿨에 막상 입학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은 더 나빴다. 첫 학기 기말고사 성적을 받은 날,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받아든 성적표에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서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학점이 적혀 있었다. 


좋은 로펌에 취직해서 몇 년 경력을 쌓고 한국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그 학점으로는 로펌 취직은 커녕 졸업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년 여름 방학때 인턴을 할 로펌을 어렵게 잡아 놓았건만, 이 학점을 알게 되면 바로 퇴짜를 놓을 것 같았다. 


이거 아무래도 시간 낭비, 돈 낭비 같은데, 더 늦기 전에 그만 둬야 하나. 아내에게는 뭐라고 말하나. 지금이라고 GMAT 공부해서 MBA로 갈아 타야겠는데. 하루 종일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내 멘토와 상의하기로 했다. 내가 다니던 Osgoode Hall 로스쿨에는 한인학생회가 있었고, 그 곳에서는 3학년과 1학년을 멘토-멘티로 이어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다. 내게는 이과 출신의 3학년 여학생이 배정되었는데,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대형 로펌에서 여름 인턴 자리를 구하게 해 준 은인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15년 정도 어렸지만, 로스쿨 생활에 관한 한 기댈 수 있는 친구였다. 


하지만, 아무리 멘토-멘티 관계라도 학점을 공개하기는 정말 창피했다. 어떻게든 학점 공개는 피해가고 싶었으나, 문제를 정확히 말 해 줘야 가이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두 눈 질끈 감고 내 학점과 내 고민을 이야기했다.


멘토는 밝은 표정으로 (너무 밝은 표정이어서 도대체 내 상황을 이해 하는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내 말을 들었다. 내 최종 질문은 이거였다. 이 학점으로 보면 누가 봐도 그만 두는게 맞는 거 아니냐. 네 생각은 어떠냐. 그러자 멘토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D만 받으면 졸업할 수 있어요.


뭐라고? D라구? D만 받으면 졸업이 된다고? 


난 몰랐다. 평점 C를 받아야 하는 줄 알았다. 내 학점은 아무리 나빠도 D보다는 확실히 높지 않은가. 이 학점 밑으로는 더 떨어질 수 없을 것이니, 그럼 졸업은 된다는 것 아닌가. 식욕도 없었는데, 갑자기 방정맞은 희망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희망이 아니다.


"D 받은 졸업생을 어느 로펌이 뽑아주겠어? 졸업하나 마나 아니야?"


그랬더니 멘토가 더 희망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 


"로펌에 이 번 여름 인턴 합격 하셨잖아요. 이미 합격했으니 이 성적표 달라고 안 할 거예요. 이번 여름에 일 잘하면, 그 다음 여름 방학 때 또 오라고 할 텐데, 그 때는 아무런 서류도 낼 필요가 없어요. 2년째 여름에도 일 잘 하면 졸업 후에 연수를 하러 오라고 할 텐데, 그 때도 아무런 서류를 낼 필요가 없어요. 연수생 때 일 잘하면 변호사로 채용을 할 텐데, 그 때도 아무런 서류를 낼 필요가 없어요. 그렇게 되면 이 성적은 아무도 모르고 영원히 묻히는 거예요."


어? 그래? 


너무 밝은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하니 그런가, 그런가 하면서 들었지만, 뭔가 속는 기분. 그러니까 내가 이번 여름 방학 연수에서 일을 잘 하고, 이후에도 계속 일을 잘 해서 같은 로펌에서 계속 뽑아주면, 이 성적을 공개하지 않고도 대형 로펌에 취직할 수 있는 거다. 졸업은 D만 넘기면 되고. 


마음은 들뜨지만, 머릿 속으로 계산해 보면 분명히 좁은 문이다. 좁아도 너무 좁은 문이다. 그렇다면 도박 아닌가?


"하지만, 계속 채용이 되지 않아서 다른 로펌에 지원을 해야 햐면?"

"그럼 당연히 성적표 다 제출 해야죠."

"이 성적을 뽑을까?"

"(밝은 표정으로) 안 뽑죠."


뭐라고? 아니, 잘 나가다가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럼, 잘 될 확률이 너무 희박한 거 아니야? 도박 아닐까?"

"그러니까 성적은 다음 학기부터 올려야죠. 평균 학점이 아니라 학점이 오르는 추세를 보는 로펌도 많아요"


실낱같은 희망 두 개 - 이번 여름 방학 때 일을 잘 하거나, 성적을 앞으로 계속 올려가거나. 내 멘토는 그걸 붙들라 했고, 나는 얌전히 그 말을 따라 로스쿨 생활을 이어갔다.  


40세인 내가 높은 목표를 두고 절망할 때, 그 20대의 어린 소녀는 나에게 꿈을 작게, 목표는 낮게 잡고 현재를 이어가는 길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실낱같은 희망 두 개는 결국 다 현실이 되어, 나는 첫 로펌에서 연수생을 거쳐 변호사가 되었고, 내 1학년 1학기 학점은 영원히 묻혔다. 하지만 묻히지 않아도 괜찮았다 - 나는 2학년부터는 어디에 내 놓아도 밀리지 않는 학점을 받았으니.  


높은 꿈을 이루기 위해 꼭 거창한 성취들이 많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작은 성취 하나씩만을 이어가도 그 끝에는 높은 것이 있다. 거창하게 이루려고 하면, 많이 이루려고 하면,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걸 나는 몸으로 배웠다. 


그 어린 학생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 나중에 나의 한국 회사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니, 그 여학생이 내게말한 것, 포기하지 말고 좁은 문이라도 보이면 앞으로 가라는 그것이 내가 한국에서 그들에게 늘 말하던 거였다는 거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로스쿨을 갔다는거다. 


그렇구나, 확실히 남의 일은 말하기 쉽구나. 나의 일이 되니, 달리 보이는구나.


하지만, 나도 변명 거리는 있다. 그 학점의 충격은 내가 그 시절에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노라고. 어쨌든 그 때 과감하게 로스쿨을 팍! 때려쳤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런 자세로는 아마 다른 것을 시도했어도 중간에 포기했을 거다. 아, 모골이 송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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