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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15. 2023

무엇을 음미할 것인가?

희소성에 빠진 자의 깨달음


음미하다 - 사전을 찾아보니 어떤 사물이나 개념의 속 내용을 새겨서 느끼거나 생각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럼, 음미는 왜 하는 걸까? 내 생각에 음미는 나를 채우기 위함이고, 무언가를 음미하는 시간은 나를 채우는 시간이다. 


한국에거 소주파였던 나는 위스키나 꼬냑 같은 양주를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그저 소주는 25도, 위스키는 40도짜리 알코올이니, 알코올 도수 15도 차이에 가격 차이가 이 정도면 차라리 위스키 한 잔 마실 시간에 소주 2잔을 마셔 50도처럼 즐기리라… 이런 생각이었다. 소주는 브랜드 별로 다른 맛을 대충 구분할 수 있었지만, 양주는 다 좀 독한 알코올 정도로 맛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는 시간도 양도 많이 줄어든 어느 날 위스키 전문가를 한 명 알게 되었다. 이 분은 위스키를 마시는 것으로 즐기기도 하지만, 위스키를 재테크로 구입하는 분이었고, 소위 주테크로 캐나다와 포르투갈에 집을 가지신 분이었다. 나도 덩달아 그 분이 추천하는 위스키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술은 별로 마시지 않지만, 위스키는 그저 가끔 한 잔씩 마시다보니, 언젠가부터는 "마신다"라기 보다는 "음미한다"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게 되었다. 음미할 수 있게 되니, 마치 소주가 브랜드에 따라 맛이 다르듯, 이 녀석들도 다른 향이 있고, 다른 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음미할 수 있게 되니 선호하는 브랜드가 생기고 수집하는 브랜드도 생긴다. 마치 예전에 커피를 줄이고 나서야 커피 맛을 알게 된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아마도 뭐든 풍요로울 때는 제대로 음미할 수 없나 보다. 


그런데, 위스키에 관심을 두다보니 온타리오주에는 카뮤 꼬냑은 유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구하기가 쉽지 않고,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희소하다. 


위스키를 마시게 되면서도 나는 꼬냑을 즐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해외에서 누군가 방문하면서 술이라도 사 줄까… 하면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까뮤 꼬냑을 사 달라고 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희소한 것을 달라고 했다. 


희소성은 그 자체로 매력이 있다. 이런 술은 선물하면서 “온타리오에서는 구할 수 없는 술”이라고 생색내기 딱 좋기도 하고, 마시면서도 “이건 온타리오에서는 웬만해서는 못 마시는 술”이라고 생각하며 마시게 되니 뭔가 특별한 것을 마시는 느낌도 가지게 된다.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맛과 향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희소성을 음미하게 되었더랬다. 


희소성의 금전전 가치가 크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을까. 예로부터 매점매석이 있었으니 희소성의 금전적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많았겠지만, 글쎄, 나를 위해 온더락 한 잔을 마시면서도 맛과 향이 아니라 희소성을 음미해야 하나, 이게 음미할 가치가 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즐기는 맛도 향도 아닌데, 그저 희소성을 음미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면, 나는 정말 나를 위해 이 한 잔을 마시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희소성의 음미는 나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소외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싶다. 희소성으로 인해 "내"가 소외되는 순간이다 싶다.


그 동안은 희소성을 즐겼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번 주말에는 다시 내가 좋아하는 맛과 향을 한 잔 음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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