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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15. 2023

얼마나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는 것

소매업에 종사하는 친구같은 인생 선배가 계시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현금 사용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소매업이다 보니 여전히 동전 사용이 많은 업종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이 가게를 통하는 동전의 양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과 캐나다의 동전 크기와 단위가 비슷하다보니, 그리고 미국에서 놀러오는 사람들도 많다보니, 미국의 25센트 동전과 캐나다의 25센트 동전을 구별하는 것이 일이었다고 하셨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가지고 일본에 가면 500엔처럼 자판기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500원이 5,000원의 가치를 할 수 있던 거다. 


매번 분류해서 은행에 가져다던 어느 날, 은행 마감 시간을 다가오고, 해서 그냥 동전들이 좀 섞인 채로 은행에 가지고 가셨단다. 에이, 대충 섞어 넣으면 좀 어떻겠어, 하고. 


그런데, 동전이 섞인 것을 본 은행원이 쇠 막대기를 가지고 오더란다. 



이게 뭘까? 하는데, 이 은행원이 미국 동전 사이에서 캐나다 동전을 딱 골라 내더란다 - 이렇게.



이거 참, 신기하구나, 생각하고 원리를 물어보니, 미국의 25센트와 캐나다의 25센트는 금속 배합 비율이 달라서 캐나다 25센트와만 반응하는 자석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셨다고 했다. 


크기로도, 색깔로도 구별되지 않아, 일일이 육안으로 무늬만 보고 구별해 왔는데, 성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쉽게 두 가지를 구별해 내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차이를 알아내는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많은 경우 해법의 시작이 된다.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뭐가 다른지, 왜 다른 지를 세세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보리밥이나 기타 잡곡밥을 권장하던 때였다. 건강 때문이 아니었다. 쌀이 모자라니 잡곡을 먹어 쌀 소비를 줄이자는 취지였다. 점심시간이면 담임 선생님께서 도시락을 꺼내라 하시고는 잡곡이 30%이상 섞였는지 검사하시고. 잡곡의 비율이 낮으면 가정통신문에 몇 자 적기도 하셨다. 


그러다보니 농사와는 거리가 먼 서울에 살았음에도 농부들의 수고와 쌀의 고마움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그 과정에서 피가 벼에 피해를 주는 잡초라는 것 정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피에 대해 아는 것은 벼와 비슷하지만 벼보다 빨리 자란다는 것, 벼가 다 익기도 전에 벌써 씨를 다 뿌리기 때문에 피를 뽑지 않고 그냥 두면 그 다음 해에 논이 피밭이 된다는 것, 그래서 피를 일일이 손으로 제거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농부들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대학에서 식물병리를 공부하다보니, 벼와 피 사이에는 몇 가지 생리적인 차이가 있었는 데 그 중 하나가 광합성 효율이었다. 쉽게 말하면 벼는 탄소를 3개 묶음으로 저장하는데, 피는 4개씩 묶어서 저장하기 때문에 광합성 효율이 더 좋고, 그래서 더 빨리 자란다는 것이었다. 


이건 피가 벼와의 생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큰 장점임에는 틀림 없다. 그런데, 이 장점이 피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게 된다. 바로 이 차이를 이용해서 C4 plant 만 죽이는 제초제가 나타난 것이다. 벼와 피는 같은 속 식물로 전반적인 생리 차이가 별로 없지만, 그 별로 없는 차이 중에서 이 작은 차이를 구분해 내는 제초제는 벼는 살리고 피는 죽인다. 


그러고 보면 그저 직관적으로 아, 이거 두 가지는 다르지... 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세심하게 관찰을 해서 무엇이 다른지를 규정할 수 있는 척도와 기준을 만들고, 그래서 그 척도와 기준으로 비슷한 두 가지의 차이를 짚어낼 수 있고, 다시 그 차이에 기인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뭔가를 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는 것" 의 차이다. 그리고,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도 한다. 그런데 참 많은 경우, 아 다르네... 하고 넘어간다. 왜 다른 지 설명하지는 못하고, 그저 다르다는 답을 맞춘 것으로 만족하고 넘어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차이 없는 하루를 보내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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