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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09. 2023

아들의 아내지만 내 며느리는 아닌 여인

회춘하는 비방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이 글은 예전에 올렸던 글에 세부 사항을 추가하여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글입니다. 글이 길고, 이전 글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나는 나이 40이 되어 캐나다를 왔으니, 다른 캐나다 이민자에 비해 조금 늦은 나이에 캐나다 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에 와서 처음에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 분들은 대부분 나보다 살짝, 대략 5년 정도 더 연배가 있는 분들이셔서 나는 꽤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막내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내가 곧 걸어가게 될 길들을 바로 앞에서 걸어가시는 분들이니, 그들의 고민이 곧 나의 고민이 될 터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 분들이 체험으로 터득하신, 캐나다에서 생기는 문제를 대처하는 요령들은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서 자리를 잡고, 캐나다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놀랐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 분들이 가지고 있던 바램 중에서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인데, 그건 바로 자녀들이 한국인 배우자를 만났으면, 하는 것이었다. 


글쎄, 외국인 사위나 며느리를 맞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 설마 우리 집이 그 경우는 아니겠지?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도 있고, 절도 있는데 거기서도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그 분들 말씀으로는 한국인 사위나 며느리 맞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 교회나 절도 있지만, 오히려 오래 같이 종교 생활을 한 사람들 중에서는 커플이 되는 비율이 적었다. 내가 자리를 잡은 토론토에는 그래도 한국 이민자들이 많은 편이고 한국에서 유학을 오는 학생들도 많아, 한국인끼리 어울릴 기회가 많은데도 이 정도라며, 토론토 지역을 벗어나면 외국인 사위, 외국인 며느리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보고 들은 사례를 말씀해 주신다. 자신은 일하고 왔으니 시아버지에게 밥을 차리라는 며느리 이야기, 장모가 방문해도 소파에 누워 TV를 보면서 손만 한 번 스윽 흔들고 마는 사위 이야기, 집에 김치 냄새 나게 하지 말라는 사위 때문에 힘들어 하는 딸 이야기, 자기 나라에서는 집안 일이 남편의 몫이라는 며느리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아들 이야기. 


물론 같은 한국인이라고 해서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사위, 좋은 며느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모르시는 바가 아니었다. 한국인이면 말이라도 잘 통하니 더 낫지 않을까 싶지만, 한국인이라고 해서 다 국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 며느리라 좋아했는데 국어는 못하고 걸핏하면 시부모에게 영어로 소리를 질러대는 경우라든지, 한국인 사위라서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캐나다에서 태어난 무늬만 한국인인 경우라 백인이나 흑인 사위 맞은 거와 다를 것이 없다든지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외국인 사위, 외국인 며느리를 들인 후에 가치관의 차이나 생활 습관의 차이를 가진 사위나 며느리로 인한 갈등 때문에, 결국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이 남남으로 살게 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도 같은 한국인이면 좀 나을 텐데, 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고 하셨다. 적어도 말이라도 통했다면, 아니, 사위나 며느리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돈끼리라도 말이 통했다면, 그랬다면 그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사례를 주위에서 종종 보실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인 1세라고 해도 캐나다에서 자리 잡고 사시는 분들이니, 영어가 불편하기는 해도 영어로 의사소통 자체가 안 되시는 부모님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로 속내를 터 놓고 얘기하거나 언성을 높여가며 다툴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으니, 속앓이만 하면서 답답해 하시는 분들은 나도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외국인 사위, 며느리 자랑에 입에 침이 마르는 분도 여럿 계셨다. 중국인 남자들은 여자에게 잘 하기로 소문이 나서, 중국인 사위를 얻으면 딸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다는 이야기도 있고, 백인 사위가 의사라서 장인, 장모에게 매달 풍족하게 용돈을 준다는 분도 계셨다. 


그래도 그건 어쨌거나 차선이었다. 똑같은 조건의 한국인 사위, 며느리를 볼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고들 하시니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조금 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런 상황을 버텨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게 준비한다고 준비가 되는 일일까? 한국에서만 40년을 살았던 나는 내 사위나 며느리가 한국인이 아닌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막연한 불안감만이 있었다.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인데도 불안하니, 결혼할 나이가 된 자녀를 가진 이민 1세 부모들의 고민이 이해가 되지 않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인 부모님들의 한국인 사위, 한국인 며느리에 대한 애착이 큰 상황에서 자녀들은 또 자녀들대로 고민이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나는 캐나다에 와서 로스쿨을 다녔다. 내가 다닌 오스굿홀 로스쿨에는 한국인 로스쿨 학생들로 이루어진 한인학생회라는 동아리가 있었다. 대부분 나보다 15년 정도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기댈 곳이 전혀 없던 나는 바로 그 모임에 가입했고, 실제로 로스쿨에 적응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첫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한인학생회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해 주던 날, 간단하게 식사를 같이 한 후에 서로를 소개하면서 한 가지 공통된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는 게임을 했다. 질문은 “엄마에게 절대로 말 할 수 없는 나의 비밀” 이었다. 


그 때 나보다 한 학년 높은 여학생이 이렇게 답변했다. “그 동안 내가 만난 남자 친구의 수”. 모두들 박장대소. 그 여학생도 웃기는 했지만, 사실 힘들었다고 했다. 


자신은 부모님이 모두 1세 한국인이니 한국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본인은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캐나다에서 자라서, 캐나다인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 친구를 사귀고 헤어지는 데에 엄마보다 훨씬 자유분방한 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한국인 중에도 보수적이신 편이라 엄마와 남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주위에서 공감을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자기 소개는 잠시 중단되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꼭 한국인 하고 결혼해야 한다고 하는데, 주위에 좋은 한국인은 없지만 좋은 백인이나 흑인은 많은데, 한국인과 결혼하기 위해 좋지 않은 배우자를 선택할 수는 없지 않느냐, 결혼하고 싶은 정말 착하고 배려심 많은 애인이 있는데, 부모님은 피부색만 보고도 반대하실 것 같아 고민이다 등등 여러 가지 사례가 쏟아져 나왔다. 


문제의 근간은 1.5세나 2세에게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중동 사람이든 남미 사람이든, 다 이성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민 1세 남자 중에는 아무리 예뻐도 캐나다의 백인 여자들은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은데, 어려서부터 다인종 사회에서 자라난 1.5세나 2세들은 그런 마음의 제약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인종이 달라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는데 부모님을 위해 마음이 가지 않는 한국인으로 짝을 정하기는 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지속되다 보니, 이런 경우에 사용할 요령이 하나 돌아다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남자든 여자든 결혼을 생각하는 애인이 한국인이 아닌 경우, 부모님이 가장 싫어할 것 같은 인종의 일반 이성 친구를 먼저 소개시키라는 것이다. 인종 차별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보통은 흑인이나 동남아 사람들을 싫어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어쨌든 그러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깜짝 놀라실 텐데, 그러다가 나중에 진짜 애인을 소개시키면, 아이고 그나마 이게 어디냐 하기도 하고, 이미 한 번 받은 충격이 있기도 해서,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해 주신다는 것이었다. 


이런 요령까지 있는 것을 보니, 어떤 대상을 결혼 상대로 하는지는 한인 1세 부모님뿐만 아니라 그 1.5세, 2세 자녀들에게도 사실 적지 않은 부담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그 후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을 해 보았다. 나에게 와서 "아버님, 안녕하셨어요?" 라든지 "장인어른, 잘 지내셨습니까?" 라고 허리 숙여 인사하는 사위, 며느리와 "하이, 미스터 신!" 이라며 악수를 청하는 사위, 며느리 중에서 나는 어느 편을 선호할 것인가?


그건 나에게 사위란 무엇이고 며느리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듯했다. 


국어든 영어든 언어를 불문하고 사람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름에는 보통 그 호칭이 주는 이미지가 있다. ‘아버지’라고 하면 어쩐지 든든할 것 같고, ‘프렌드’ 라고 하면 왠지 친근할 것 같다. 


사위나 며느리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이미지도 당연히 있다. ‘사위’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내게 허전함을 주면서도 뭔가 대우해 주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들게 하고, ‘며느리’라는 말은 어쩐지 긴장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나를 대우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그리고 사위든 며느리든 모두 공손할 것이라는 이미지가 내게는 있다. 그런 느낌, 그런, 마음, 그런 이미지가 내 머리에 이미 들어 있는 상태에서 질문을 던져보니, 몇 번을 물어보아도 사실 답은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예쁘고, 잘 생기고, 잘난 사위나 며느리일지라도 “하이, 미스터 신”이라고 내게 인사하는 사람이 사위나 며느리로 여겨질 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라면, 그리고 아들이 한국인 며느리를 데리고 온다면, 아들의 아내와 나 사이에는 아무리 관계가 나쁘더라도 저절로 시아버지와 며느리라는 관계가 성립할 것이고,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너는 내 며느리가 아니야” 라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겠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혹시라도 아들이 외국인 며느리를 데리고 왔을 때, 그 여인이 내가 생각하는 "며느리"일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된다면 그 여인은 아들에게는 아내이지만, 내게는 며느리가 아닌 여인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미연에 방지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세뇌하기 시작했다 - 결혼은 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 사람하고 해야 해, 아빠한테 “미스터 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네 아내, 네 남편이 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아빠 사위, 아빠 며느리는 될 수 없지 않겠어? 그리고 혹시 한국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국어를 할 줄 모르면 영어가 불편한 엄마 아빠하고 무슨 대화를 하고 어떻게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어? 그러니 배우자는 꼭 한국 사람 중에서, 그리고 국어를 잘 하는 사람 중에서 골라야 해.  


그런데, 내가 너무 밀어붙였는지, 어느 날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아들이 선언을 했다. 자신이 결혼할 여자는 미리 아빠에게 보여 드리지 않겠다고, 연애를 하더라도 여자 친구 있다는 건 비밀로 할 거라고, 결혼 전 날에 예식장만 알려줄 거라고. 그랬더니 딸도 가세했다. 자기도 아빠에게 남자 친구 미리 소개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그건 본인들에게 더 이상 압력을 넣지 말라는 반발이었다. 설마 그러랴 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 후로 아들이 직장인이 되어 일하는 지금까지 더 이상 한국인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그러니까 네게만 아내일 여인이 아니라 내게도 며느리일 수 있는 여인을 데리고 오라는 압력은 더 이상 넣지 않았다. 뭐 그렇게 반발할 정도면 일단 알아는 들은 것이니 일단은 성공 아니겠나.


그 후로 햇수가 많이 흐른 어느 날, 성인이 된 딸이 아빠, 엄마한테 말해 줄 것이 있다고 하더니, 남자 친구가 있다는 거다.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사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내 사무실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우리 사무실 직원이 내 딸이 남자와 같이 데이트를 하는 것을 지난 주에 목격했다고 나에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외관상 한국인인 것 같다는 귀뜸도 받은 터여서 조금 마음을 놓고 있던 참이었다.


딸도 아들처럼 연애는 비밀로 하겠다고 했었기 때문에 왜 마음을 바꾸고 아빠, 엄마에게 말을 해 주는 지 물어보았더니, 며칠 전에 자기 친구가 부모님께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을 말씀드리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았는데, 마침 고등학교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와 이번 달부터 사귀기로 했기에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는 거였다. 


이야기를 미리 안 해 주리라 내심 섭섭한 생각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마웠다. 그런데 딸이 말하기를 남자 친구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는 것이었다. 마음이 동요했으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사실 중국인 사위에 대해서는 나쁘지 않은 평가가 많이 있었으니 말이다. 중국의 문화가 남편이 음식도 하고 집안 일도 하는 편이라 딸이 편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은 되었구나, 중국인이면 그래도 어른에 대한 예의는 캐나다인보다는 낫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딸이 또 말하기를 중국계이기는 하지만, 3세라서 부모님도 중국어를 모르는 분들이고 이 친구는 그냥 캐나다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예전에 고등학교 친구 시절에 만만 남자 친구 어머니는 오히려 자신 보다도 한자를 모른다고 했다. 그러더니 묻는다. 한국인이 아니고 국어도 못하는데 괜찮느냐고. 


괜찮다고 말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내 표정에 변화가 생겼는지 딸이 덧붙였다. 자신도 한국인 만나보려고 한국인 모임에도 많이 나가고 한국인 많은 교회도 나갔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딸의 친구들은 하지 않을 고민을 내 딸은 나 때문에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고 아빠에게 말하면 될 것을, 애써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보게 하고, 남자 친구가 생겨도 말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를 고민하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을 계기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왜 꼭 딸에게서 사위를 얻어야 하고, 꼭 아들에게서 며느리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장인 대우, 시아버지 대우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내가 혈혈단신으로 캐나다에 건너와 어렵게 집안을 일구었다면 그런 체계 잡힌 가정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게다가 부모님과 장인 어른, 장모님, 모두 한국에 남겨두고 장남, 장녀가 캐나다로 와서 생활하는 상황에서 나는 꼭 장인어른으로, 혹은 시아버지로 대접을 받아야겠다고 할 만큼 염치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는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한국의 드라마나 사극에서나 보던 시아버지와 며느리,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그저 손쉽게 캐나다에서도 재현되기를 기대한 것뿐이었다. 장인 대우, 시아버지 대우를 받을 생각도 없는데, 그리고 사위나 며느리 역할을 바랄 이유도 없었는데. 그런데도 내가 보고 들었던 바로 그 장인-사위, 시아버지-며느리의 관계를 갖게 해 달라고 아이들에게 강요를 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낸 것으로 고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보고 들은 사위나 며느리 이미지에 부합하는 사위와 며느리를 맞으면, 그저 감사하면서 장인어른이나 시아버지 노릇을 하면 될 일이지만,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위나 며느리가 들어오게 되면 내가 어찌해야 할지가 문제였다. 어쨌거나 그리 될 확률이 좀 더 높아진 상황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머릿속에 굳게 자리잡은 며느리나 사위라는 이미지를 억지로 부정하면서, 내 아들의 아내면 무조건 며느리지, 암,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 혹시 나는 이렇게 말해야 할까?


“이 여인은 네 아내지만 내 며느리는 아니다. 내게 며느리란 자고로 나에게 대들더라도 국어로 대들어서 내가 국어로 답을 할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네 남편이지만 내 사위는 아니다. 내게 사위란 자고로 나를 보았을 때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90도 숙여 예를 갖출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 생각만 해도 유치했다. 이건 그들이 내 사위나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그들의 장인어른이나 시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깊이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문득문득, 그런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던 어느 날, 갑자기 내 로스쿨 시절이 생각이 났다. 


나는 나이 40에 캐나다 로스쿨에 입학했다. 너무 늦은 나이에 너무 무리한 목표를 세웠다는 불안감으로 가득 차서 시작한 로스쿨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동기는 어려서 월반을 두 번이나 했다는 18세 청년이었고,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규모 있는 회사의 사장으로 은퇴 후 고향에서 변호사를 하고 싶어 지원했다는 50세가 넘은 할아버지셨다. 


동기간 나이 차이가 32살이나 되는 환경이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대학을 갓 졸업한 친구들이었고, 그래서 아침에 학교에 갔을 때 나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안녕, 친구 (Hey, dude)!” 이라고 하는 친구들도, 로펌에서 나와 함게 밤 샘을 시작하던 동기들도 모두 20대 중반 친구들이었다.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다. 속된 말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들이 감히 내 어깨에 손을 터억 설치는 것도 모자라 안녕, 친구! 라니. ‘한국 같았으면 갓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내게 부장님, 부장님, 했을 녀석들이. 대체 내가 어딜 봐서 네 친구냐!’ 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하지만 그 때에는 그걸 영어로 표현할 자신이 없어, 나도 그저 웃으면서 “하이, 굿 모닝!” 으로 화답할 뿐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나는 그렇게 20대의 말과 20대의 생각과 20대의 행동을 듣고, 배우고, 익혔던 듯 싶다. 그래서 그런지, 그 때 나는 내 나이보다 젊었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 젊게 생각하고, 젊게 행동하고, 그렇게 화장품의 도움 없이도 젊었더랬다. 40대지만 20대처럼 살았다. 


갑자기 그 기억이 떠 오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아내이지만 나의 며느리는 아니라면, 딸의 남편이지만 나의 사위는 아니라면, 내가 그들과 친구로 살면 되지 않나. 40대에 20대 친구를 만났는데, 50대, 60대가 되어서 다시 20대, 30대 친구를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사위 보다 친구가 좋고, 며느리보다 프렌드가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위 눈치, 며느리 눈치 본다는 말은 들어 보았어도, 친구 눈치 본다는 말은 못 들어봤으니 말이다. 


내 생각을 들은 한 지인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김칫국이야. 그 애들이 친구를 해 주기는 한대?”


글쎄, 그건 그렇다. 하지만, 그건 이미 경험이 있고 대책도 있다. 내 어깨에 손을 걸치고 “여, 친구!” 하던 동기들에게 “어디 20대가 감히” 라고 하지 않고 “굿 모닝”이라고 한 것처럼, 내 아들의 아내가 손을 흔들며 “하이 미스터 신” 이라고 하면 “어디 며느리가 감히!” 라고 하지 않고 나도 손을 흔들며 “하우 아 유?”를 외쳐주면 된다.  


그래서 이제 내 생각은 바뀌었다. 이제는 사위, 며느리 말고 친구를 맞으련다. 속 썩이는 며느리보다 친구가 낫고, 말 안 듣는 사위보다 친구가 낫다. 내 아들의 아내지만 나는 그 여인을 며느리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할 것이고, 내 딸의 남편이지만 나는 그를 사위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할 것이다. 그리고, 내 오래된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이다. 젊은 친구가 생겼노라고.


얘들아, 아빠는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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