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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Oct 14. 2023

도대체 누가 한국인인가?

무늬로 한국인, 마음으로 한국인

캐나다는 영어와 불어가 공용어인 나라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캐나다에 올 준비를 하면서 불어 학원을 다녔다. 영어와 불어를 같이 쓴다니, 불어도 당연히 알아야겠거니 생각했었고,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기본 회화는 되는 수준까지 되었다.  


하지만, 퀘벡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캐나다에서 고위 공무원이 될 것도 아니라면, 굳이 불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캐나다에 와서야 알았다. 억울했다. 후회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영어 공부나 더 할 것을.  


내 중급 불어 강사님은 한국인이셨다. 딸이 하나 있는데, 나이는 어리지만 혼자 프랑스에 보내서 유학 중이라고 하셨다. 허걱, 초등학생을 혈혈단신으로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다니 – 그것도 대부분이 선망하는 영어권이 아니라 프랑스라니. 나는 강사님이 대단한 프랑스 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조금 슬픈 이야기였다. 


애기일 때 프랑스에 데려간 딸은 프랑스 학교에 다니다가 한국으로 와서 초등학교를 잘 다니고 있었단다. 아무 말도 없기에 잘 적응하는 줄 아셨단다. 


그런데, 어느 날 가족이 함께 명동인가 종로에서 외식을 하고 돌아가는데, 매장에 진열된 (그 당시에는 갈거리 상점에서 가전제품 파는 경우가 많았고, 매장 밖에 TV를 놓고 틀어주는 곳도 많았다) TV에서 파리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서 프랑스 국가가 흘러나왔다고.  


그런데, 프랑스 국가를 들은 딸이 TV를 보면서 갑자기 주르륵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이다. 그 때 생각하셨단다.  


아, 얘는 프랑스인으로 자라야 하겠구나. 


그 딸은 이름도, 외모도, 피도 한국인이었지만, 그 마음은 프랑스인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교실에서 매일 애국가를 부를 때였지만, 그 딸의 심금을 울리는 건 애국가가 아니라 프랑스의 국가였다. 강사님은 딸을 프랑스로 보냈고, 프랑스는 그 아이를 기꺼이 받았고, 그래서 그 딸은 프랑스인으로 자라고 있었다.


토론토에서 사회복지사 활동을 오래 하신 분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해인가 한인을 위한 한가위 축제 준비를 도와주고 계셨단다. 그런데, 어떤 한국인이 전화를 해서 엄마가 한국인이지만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친구를 한 명 데리고 가도 되겠냐고 하길래 너무 좋다고, 꼭 데리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고 했다.  


행사 당일, 접수를 맡아 보고 있던 그 분께 한국인과  흑인이 다가왔다. 보통은 한국인끼리, 혹은 외국인끼리 놀러 오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이 친구들이 바로 전화했던 그 친구들이라는 걸 알아챈 이 분이 한국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전화 하셨던 분이죠? 


그런데, 그 한국인이 순간적으로 반 보 뒷걸음질을 치더란다. 어, 왜지? 생각했는데, 그 옆에 있던 흑인이 그러더란다.  


제가 한국인이예요. 이 친구는 말씀드린 캐나다 사람이구요. 


순간 얼마나 당황하셨는지 모른다고 했다. 너무 미안해서 연신 사과를 했다고. 행사 중간에 음식 부스에서 빈대떡을 사다가 그 친구들은 찾아가 드리면서 또 사과를 하셨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흑인이 말하더란다.  


자기는 한국인인데, 한국인으로 자라고 그렇게 키워졌는데, 아무도 한국인으로 봐 주지 않는다고. 그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은 한국인 취급을 받은 적이 없다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그럴 법도 하다. 그 때만 해도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흔하지 않았고,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는 생각이 주류였으니 (이 부분은 지금도 그렇겠지만) 피부색이 다른 한국인을 떠 올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는 상황이 바뀐 건 아닐까.


얼마 전에 파키스탄에 배낭 여행을 다녀온 한국 친구가 전화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해 주었다. 파키스탄에서 짐을 잃어버려서 조금 난처했단다. 다행히 지갑은 분실하지 않아서 물건을 다시 사야하나 고민하면서 대사관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고. 그런데, 갑자기 파키스탄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다가오더니 전화 끝나기를 기다려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한국인이세요?


어라, 국어네. 외양은 분명 파키스탄 사람인데? 


구세주를 만난 기분에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크게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어디서 국어를 배웠는지, 혹시 파키스탄 대학교에 한국어학과가 있는지 물어보셨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매였다. 부모님이 결국 한국에 머무를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고, 미성년이었던 그 두 남매도 어쩔 수 없이 파키스탄으로 추방되었고, 그 후로 계속 파키스탄에서 살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파키스탄은 그저 외국 땅인데, 자신들은 피부색만 빼면 온전한 한국인인데, 왜 파키스탄으로 추방되었는지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들은 파키스탄에서 아직도 이방인이라 지금도 그 결정이 원망스럽다고 했단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이 그립고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고, 이렇게 한국 사람이라도 만나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단다. 


이야기를 마치고 친구가 내게 물었다. 


도대체 한국인의 정의가 뭐냐? 이 남매들이 한국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한국인이냐? 


아직까지도 과거의 친일파들을 두둔하고 나라 팔아먹은 것을 정당화하는 일부 골수 친일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귀화가 쉽다는 점을 이용해서 투표권으로 친중 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일부 한국계 중국인 분들 (조선족 분들)에 비하면, 내 사상을 위해 나라를 둘로 갈라놓는 그 많은 자칭 좌파와 우파 사람들에 비하면, 이 파키스탄 남매가 오히려 진짜 한국인 아니냐. 


글쎄, 잘 모르겠다. 프랑스 국가에 눈물 흘리는 한국인은 프랑스인으로 살 수 있는데, 애국가에 눈물 흘리는 파키스탄 사람은 왜 한국인으로 살 수 없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우리나라는 둘로 찢어져서 '나라'는 없고 '파벌'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벌을 위해서라면 태극기도, 애국가도 그저 이용할 대상일 뿐인 것 같다. 우리 파가 이길 수만 있다면 나라가 갈라지든 말든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과연 그 파키스탄 남매보다 더 자격있는 한국인일까? 


온갖 인종이 함께 모여 있는 캐나다 초등학교 교실에는 매일 아침 캐나다의 국가가 울려 퍼진다. 모임이 있는 곳에는 캐나다 국가가 울려 퍼진다. 그래서 캐나다에 사는 외국인들도 캐나다 국가는 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될 수 있다는 것이 잊혀진 지금, 어쩌면 지금이 다시 초등학교에 다시 애국가가 매일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무늬가 아니라, 마음이 한국인인 사람들을 키워내는 것이 급한 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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