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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17. 2023

한국인이면 로스쿨에서 세법을 수강하라구요?

네, 학점이 중요하다면요.

로스쿨 1학년이 지나갔다. 교수님이든 학교 선배들이든 가장 힘든 건 1학년이라고 하니, 이제부터는 좀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간들이다. 


모든 과목이 필수이던 1학년과는 달리, 2학년이 되면 수강할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이나 앞으로 종사하고 싶은 분야의 법을 고르느라 열심이었지만, 나는 그런 고민은 할 수 없었다. 내 고민은 오직 하나였다.


무슨 과목을 들어야 학점을 잘 받을 수 있을까?


좋아하는 과목이니, 종사할 업종이니, 이런 것도 일단 취직이 잘 되어야 의미가 있는 거 아닌가. 원주민을 도와주고 싶어서 변호사가 되었으나 돈을 벌기 위해 세법 변호사가 된 사람도 보았고, 부부간 다툼에 개입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면서도 본인에게 주어진 일이 가정법 담당이라 가정법을 떠나지 못하는 변호사도 보았다. 


로스쿨을 졸업할 때가 되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보장하는, 혹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력을 보장하는 곳에 취직이 되는 것이 우선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려면 학점이 좋아야 한다. 다른 학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혹은 관심이 많은 법을 들으면 더 좋은 학점이 나올지 모르나 난 그런 경우가 아닐 것 같았다. 


그럴 때 도움을 구하라고 있는게 멘토이고, 또 나는 한인학생회 회원이니 멘토와 한인 학생들에게 열심히 묻고 다녔다. 그렇게 해서 받은 해법 중의 하나가 "세법"이었다.


세상에나, 세법이라니. 


좀 잘 나간다 싶은 친구들도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세법이었다. 캐나다에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다는 통계가 있는 것이 세법 변호사이고, 토론토 지역에서 가장 비싼 집을 보유한 사람이 유명한 세법 변호사라고 했다. 그러니 세법에 관심을 갖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학점 받기 어렵다는 소문에 쉽게 수강 신청을 하지 않던 것이 세법이었다. 


그런데 나보고 세법을 들으라니. 다들 말하기를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의 세법 성적이 좋다고 했다.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 그거야 영어가 편안할 때 얘기지, 너희들은 영어도 잘 되면서 아무래도 캐나다 사람들 보다는 숫자에 더 예민하니 그런거지.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만만해 보이는 과목이 하나도 없고, 혹시 남들이 어려워하는 과목을 들으면 상대평가의 혜택으로 내 성적이 조금이라도 높게 나올 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세법을 듣기로 했다. 수강 신청을 하고서는 잠을 설쳤다.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하던 날, 정석 수학II 책을 노려보며 고민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생각 외로 세법이 다른 과목에 비해 이해가 쉬웠다. 다른 과목에 비해 "답"이 있는 편이고, 게다가 그 답이 숫자라는 것이 한국인인 나에게, 게다가 이과생인 나에게는 꽤 큰 혜택이었다. 


정답이 없을 때 해답을 찾는 것이 어렵지, 정답이 있기만 하다면 정답을 찾는 일에 특화된 교육을 20년 이상 받은 나에게는 세법이 그나마 잘 맞는다는 걸 알았다. 


물론 배움 자체가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정답이 있는 과목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얼마나 편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로스쿨 첫 A 학점을 세법에서 받았다. 그리고 2학년 2학기에도 같은 교수님의 세법 관련 과목을 수장해서 또 A를 받았다. 


나중에 교수님께서 귀뜸해 주시기를 1학기 세법에서는 내가 2등이었다고, 그래서 교수님도 놀라셨다고 했다. 교수님도 내 영어가 불안하셨던 던 듯. 


혼자 고민하고 골랐다면 절대로 세법은 수강하지 않았을텐데.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고, 이래서 선배가 중요하다. 모를 땐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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