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광훈 Nov 22. 2023

"법대시죠?" "... 아닌데요."

무섭지 않았느냐고 물으신다면

로스쿨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니 이것 저것 챙길 서류가 많았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으니 학교에서 떼어야 할 서류도 여러가지였다. 나와 아내 주위에는 이민을 간 사람도 없고, 유학을 간 사람도 없어서, 우리 가족을 제외하면 양가 모든 식구들과 친구들이 다 한국에 있어서 도움을 받기 수월했고, 일처리는 무난했다. 


학교에서 받아야 할 서류도 많아서 과사무실에 연락을 했더니, 과사무실에 계신 여직원께서 과사무실이 아니라 학교 행정실에서 떼어야 할 서류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차를 감안하고 한국의 대학교 행정실에 연락을 해서 서류를 요청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서류 대부분은 과사무실에서 떼는 것으로 바뀌었다며 과사무실에 연락을 하라는 거다. 어, 이상하다. 과사무실에서는 분명 행정실에서 발급하는 서류라고 했는데? 


우리 과사무실에 있는 분은 전직 대학 부총장 비서셨는데, 내 생각에 과사무실에서 하는 일과 행정실에서 하는 일을 모를 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재차 내가 필요로 하는 서류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행정실 직원이 말했다. 


"예, 그 서류 이제는 다 과사무실에서 발급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과사무실에 이미 작년에 공지가 다 나갔구요"


그리고는 묻는다. 


"법대시죠?"


내가 대답했다. 

"... 아닌데요."


그러자 잠시 침묵이 흐르고, 조금 후에 행정실 직원이 물었다. 


"... 그럼, 무슨 과세요?"


"식물병리학과인데요"


또 침묵이 흘렀다. 


".... 어, 잠시만 기다리세요"


전화비도 비싼데 한참을 기다리게 하다가 다시 전화기를 든 행정실 직원이 말한다. 


"저희가 해 드릴께요. 어떻게 받으시겠어요?"


짐작컨데, 아마도 북미에 있는 로스쿨을 가겠다고 서류를 요구한 학생들은 다 법대생들이었나보다. 그제서야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한 우리 과에도, 우리 단대에도 외국 로스쿨에 진학한 사람은 없었다. 


그 날이 지나고 한참을 또 고민했다. 여러 날, 여러 주, 그 행정실 직원의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법대시죠?" "법대시죠?" "법대시죠?"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마음닿는 대로 산을 오르고 숲을 지나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랄까. 영화 아바타에서처럼 낯선 숲에 혼자 떨어져서 밤을 지내야 하는 느낌이랄까. 그 때까지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법대시죠?" 한 마디를 듣고 생각해 보니 내가 걸으려는 길은 걸어간 사람이 없는 길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 무서울 밖에. 열심히 따라가는 건 잘 할 수 있었지만, 새 길을 개척할 자신은 없었으니까. 이 길이 아무도 간 적이 없는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으니까. 


내게 로스쿨 진학을 문의하시는 많은 분들이 나이 40에 로스쿨을 가는 결정이 무섭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신다. 그러면 무서웠다고 말씀드린다. 


무서웠다고 말하는 건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무섭지 않은 길은 뻔한 길이고, 다른 길을 찾고 있다면 그 뻔한 길이 싫어서일 것이다. 뻔하지 않은 길을 걷겠다면 무섭지 않은 길이 없을 수가 없다. 


이제는 "무서워도 가 보시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