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와 불안을 함께 주는 말
로스쿨 첫 학년, 두 학기를 마치자 마자, 바로 첫 번째 summer student 일정이 시작되었다. 내가 일할 로펌은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 있었기 때문에 2학기 기말 고사를 준비하면서 묵을 곳이나, 오타와의 사정에 대해 미리 알아보야야 했다.
그렇게 오타와 대학의 기숙사에 방을 하나 얻고, 2학기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르자 마자 토론토를 떠나 오타와로 떠났고, 재미로 해 본 한 학기 기숙사 생활을 빼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솔로 생활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의 진정한 솔로 생활이, 시작되었다.
역시 태어나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로펌 생활. 첫 날은 동기들과, 그리고 여름 방학동안 우리를 돌보아 (?) 줄 junior 변호사, partner 변호사와 인사를 했고, 로펌의 유구한 역사와 자랑스러운 업적 (?) 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좋은 호텔에 가서 식사를 하고, 평안한 분위기에 담소를 나누고, 각자 배치된 방으로 안내를 받고, 나름대로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리라는, 기대 반 걱정 반인 마음으로.
다음 날 출근을 했는데, 어라, 할 일이 없었다. 아무도 일을 주지 않아서 그렇다. 나와 방을 같이 쓰는 동기도 사정은 마찬가지. 둘이 잡담을 하면서 특허법이나 뒤적거리고 있는데, 다른 동기가 찾아왔다.
"야, 나 할 일이 없어"
내 동기가 대답했다.
"우리도 없어"
그렇게 오전이 지났고, 점심을 먹고 온 오후에도 아무 일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이 되었다. 역시 일이 없었다. 학생을 담당하는 junior 변호사가 찾아왔다. 아마 모든 summer student 들 방을 다 돌아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일 좀 받았어?"
"아무 일도 없어요"
"처음엔 다 그래. 특히 1학년들은. 먼저 2학년들에게 일이 가게 되는데, 모든 변호사들이 어제부터 너희가 온 걸 알고 있으니 기다려 봐"
그렇게 이틀동안 6명의 동기들은 아무런 일도 받지 못했다. 3일째도 마찬가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1학년이 마찬가지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었다.
거의 1주일이 될 무렵, 동기 여학생 하나가 호들갑을 떨며 우리 방으로 찾아왔다. 아침에 출근을 했는데 책상에 이런 메모가 붙어 있더라는 것이다.
"Please see me"
이게 뭘까? 어떻게 할까? 그 여학생은 물었다. 우리가 대답했다. 뭘 물어. 오라는 데 가 봐야지. 그 동기 여학생은 쪽지를 남긴 변호사를 찾아갔고, 그렇게 1학년 중 처음으로 일을 받았다. 표현은 안 했지만, 다들 부러워했다. 일을 받은 것이 부럽다니, 어찌보면 이상한 이야기지만, 그 때는 그랬다.
그 이후로 차츰 다른 학생의 책상 위에도 "Please see me" 라는 쪽지가 붙기 시작했고, 처음 그 쪽지를 받을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나도 받았다, 뭐 그 정도 의미의 환호 - 그리고 안도감. 왜 근무 시간에 찾아 오지 않고, 밤 중에 쪽지를 가져다 놓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변호사들이 낮에는 summer student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듯 했다.
어쨌든 그 당시의 "Please see me" 라는 쪽지는 1학년 꿈나무들에게는 환희였고, 계속 그런 쪽지를 받는다는 건 계속 일을 맡길 만 하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내년에도 이 곳에서 불러줄 확률과 같은 의미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대부분 우리가 한 일들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동기가 또 우리 방에 찾아 왔다. 책상 위에 "Please see me" 라는, 이제는 흔하게 받는 쪽지가 있어서 변호사를 찾아 갔는데, 지난 번 research의 방향이 잘 못 되었다면서, 다시 준비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깨지고" 온 것이었다. 어차피 summer student들이 하는 일에는 중요한 일은 없다고 했으니, 제대로 못 했다고 해서 큰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처음으로 "깨지고" 온 내 동기는 충격이 컸다 - "내년에 오라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다들 "그렇지 않을거야"라고 위로했지만, 나도 그들도 속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나를 비롯한 다른 동기들도 "깨지고" 오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는 "Please see me" 라는 말은 환희를 부르는 말이 아니라 절망과 불안을 주는 말이 되었다.
"나 Please see me 쪽지 받았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동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복기를 한다.
"하라고 한 게 뭐야?" "이 책은 봤어?" "이 판례는 봤어?" "이거 내가 지난 주에 A 변호사에게 낸 리서치 보고서인데, 혹시 연관 있는 게 아닐까?"
짧은 시간에 나름 심도있는 복기를 거치고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면서 변호사에게 찾아간다. 새로운 일이면 다행. 깨지면 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동지 의식은 저절로 생긴다. 궁극적으로는 동기 중에 반 정도만 뽑힐 것을 알고 있으니 다 경쟁자들이지만, 속된 말로 살 떨리는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쌓인 동질감은 생각보다 강했다. 그 때 그 동기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지만, 다들 소식이 끊기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면서 궁금증이 풀린 것도 하나 있었다. 왜 그 로펌의 변호사들은 하나같이 "Please see me" 라는 메모를 남기는 걸까. 생각해 보니, 다 같은 훈련 코스를 거쳤기에 그랬을 듯 하다. 그들도 summer student 와 연수생을 거치면서 수도 없이 "Please see me" 라는 쪽지를 받았을 것이니, 그저 그대로, 받은 대로, 몸에 배인 대로 했을 것이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좀 구분해서, 조금 다른 표현을 써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항상 윗 사람들의 배려는 아랫사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