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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17. 2024

야! 이게 되네!

믿져야 본전이잖아요

내가 40에 로스쿨을 가기로 결정하기까지, 수 백번도 더 결정을 번복했다. 마치 어렸을 때 아카시아 잎을 한 장씩 떼면서 간다, 안 간다, 간다, 안 간다.. 를 점 치는 것처럼 이런 생각이 들면 가기로 하고, 저런 생각이 들면 가지 않기로 하는 과정을 몇 달이나 했었다. 


그러다가 로키 산맥은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과 함께 밴쿠버에서 출발하는 로키 산맥 팩키지 여행을 갔다. 한인 여행사였기에 당연히 관광객은 한국인들이었다. 일주일 여행을 같이 하면서 친해지니, 서로 자기 얘기를 나누게 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의 고민을 알았다. 


한국에서만 살던 국내파가 나이 40에 캐나다에 와서 로스쿨을 가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일까?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제안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밴쿠버에 있는 자기 변호사를 한 번 만나 보라고. 아마 도움이 될 자문을 해 줄거라고. 


그래서 그 분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밴쿠버에서는 유명한 1.5세 변호사셨고, 한인 사회를 위한 일도 많이 하셔서 한국 TV에 다큐멘터리로도 방송을 타신 분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아니, 이런 분이 나와 진로 상담을 해 주겠다고 시간을 내 줄까? 


아무래도 말이 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냥 연락하지 않기로 했는데, 아내가 물었다 - 연락을 해 보았느냐고. 안 했다고, 안 할거라고 했더니, 믿져야 본전인데 왜 안 하느냐고, 연락은 한 번 해 보라고 보챘다. 아내도 어지간히 속이 탔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믿져야 본전인 건 맞다. 그래서 인터넷에 나온 이메일 주소로 주저리 주저리 이메일을 보냈다. 이런 상황인데, 조언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답장이 올 리 없지 않은가. 그저 아내 안심시키려 보낸 것이니 잊고 있었는데, 아내가 또 물어본다 - 답변이 왔느냐고. 올 턱이 없지만, 아내 앞에서 보여주기 위해 이메일을 열었는데, 어라! 답변이 와 있었다. 깜짝 놀라 열어 보니, 로키 산맥 여행을 마치는 다음 날 점심 시간에 오면 30분 시간을 주겠다고 하셨다. 아내를 보면서 말했다.


야, 이게 되네!


아무 것도 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지푸라기를 잡은 것 같았다. 그래서 찾아 뵙겠다고 정중하게 답변을 드리고,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지정된 시간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서 그 분을 만났다. 


30분으로 예정된 그 미팅은 장장 1시간 40분간 이어졌고, 그 분은 왜 한인 사회에 한인 변호사가 더 필요한지, 내가 변호사 자격을 따게 될 40대 중반이 변호사 하기에 얼마나 좋은 나이인지, 변호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는지, 변호사가 되면 한인 사회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등등을 열정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그 미팅이 내가 로스쿨을 가기로 결심을 굳힌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내가 그 변호사님께 보낸 이메일은 일종의 노크 같은 것이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라고 하는. 그런데, 노크를 하기 전에 "노크해도 될까요?" 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 노크 전에는 사실 아무런 사전 승인이 필요없다. 최초의 의사소통이 노크다. 


그렇기에 문을 두드리는 그 작은 손짓 하나가 있어야, 그 후의 과정이 시작된다. 


그런데, 나는 노크를 하기도 전에 "노크해도 될까?"를 가지고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노크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절박함이 부족해서그런 것일 수도 있고, 나름 Plan B가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노크 하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노크를 하니, 기대하지 않고 노크를 하니 문이 열렸고, 그 문이 열리니 그 후로 다른 문들이 계속 열려서 캐나다 변호사라는 내 생애 3번째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노크하는 것에 보다 대담해졌다. 


가끔 세미나를 하다 보면 질의/응답 시간에 "한 번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 바쁠까봐 하지 못했다"든지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느데, 개인적인 일이라 연락하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세미나와 관계없는 일들, 특히 진로와 관련된 내용을 상의하시는 분이 계신다. 그러면 꼭 이렇게 먼저 말씀드린다. 


"노크하는 걸 어려워하지 마세요. 그 때 노크 하셨으면 문은 벌써 열렸을 거예요."


그럼,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떻게 그래요, 바쁜거 다 아는데. 


글쎄요, 바쁘다고 문 안 여나요. 가 보지 않은 길을 가는데, 떠나기 전에 이 문, 저 문 노크 정도는 해 볼 수 있지 않은가요? 믿져야 본전이잖아요. 아, 제가 문을 왜열겠냐구요? 제가 노크할 때 다른 분도 문을 열어주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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