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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Dec 09. 2023

반주할 것인가 연주할 것인가

나는 나만이 연주할 수 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 모임을 하셨다. 그런데, 우리 반에 기타를 칠 줄 아는 친구가 있어서 노래를 부르는데 기타 반주를 했다. 참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대입 준비하기도 바쁜 고등학생이 되어서 기타를 배울 수는 없었다. 기타를 살 돈도 없었고, 기타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연습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대신 나는 공부하는 시간에 혹은 쉬는 시간에 노래를 즐겨 들었고 이어폰을 끼고 살았다. 


대학에 가 보니, 기타를 칠 줄 아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이모가 기타를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1년 후에는 MT를 가면 친구들 노래 반주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까지는 내게 악기란 노래를 보조하는, 그러니까 반주를 하는 용도였다. 


대학교 2학년 말에 우연히 한 밴드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악기들이 너무 시끄러웠다. 작은 연습실이 드럼 소리와 기타 애드립 소리로 가득차면 노래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악기가 노래를 잡아 먹다니, 이게 무슨 놈의 음악이야 -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때까지 나는 노래를 듣기 위해 음악을 들었다. 그러니, 기타든, 베이스 기타든, 건반이든, 드럼이든 내게는 다 노래를 보조하는 수단이었지, 그들이 주인공일 수는 없었다. 노래가 음악의 90%여야 하고, 나머지 악기들이 남은 10%를 채우면서 보조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악기는 반주용이었다.


TV 에서 가수들 공연을 봐도 그렇지 않은가. 백 댄서도, 음악도 다 가수의 노래를 살리기 위한 도구이지, 주인공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나의베이스 기타 실력은 잘 늘지도 않아서, 볼륨을 키우면 잡음이 될 것이 뻔 했다.


그런데, 선배들의 설명은 내 생각과 달랐다. 악기가 노래는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 악기는 반주용이 아리나 했다. 기타와 베이스 기타와 건반과 드럼은 노래와 똑같이 중요하다고 했다. 


"너희들 5명이 각각 20%씩 역할을 담당하는 거라고 생각해야 돼. 너는 노래를 위한 베이스 기타 반주를 하는 게 아니라, 너의 연주를 하는 거야. 그렇게 서로 다른 각자의 연주를 조화롭게 맞추기 위해 하는 것이 연습이고, 그렇게 조화된 소리를 밴드 밖의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공연이야."


수긍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였다 - 내 베이스 기타 실력이 조금씩 늘기 시작한 것은. 내 생각이야 어떻든 노래에 맞추어 반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와 나의 연주를 조화시키는 것이 공연이라면, 우선 연주할 나의 음악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그냥 음과 박자만 맞추던 것에서 톤이나 세기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나는 그 때까지 적어도 Garry Moore의 전자 기타라든가, 장한나의 첼로 정도는 되어야 연주라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연습을 하면서도 베이스 기타 실력이 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노래를 위한 보조 도구로만 내 악기를 쓰려고 했기 때문이었고, 내가 처음부터 연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주용으로 필요한 그 이상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던 것이었다.


어쩌면 회사 일도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내가 받을 것은 월급밖에 없고 내가 할 일은 월급 값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회사의 반주자로, 그저 빈 음을 채워주는 용도로 지내도 무방하고, 또 그런 용도로 밖에는 지낼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지내다 보면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사용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러면 점점 자존감이 낮아진다. 


그것이 싫어서 아무리 회사에게 나를 부품 취급하지 말라 외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가 연주를 하지 못하고 반주밖에 할 수 없는데, 나를 교체 가능한 부품 취급하지 않을 회사는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사를 향해 소리로 지를 그 시간에 내가 연주를 시작하면 된다. 


내가 연주를 시작하면, 싫든 좋든 회사는 나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노력할 수 밖에 없다. 회사는 이익을 발견하는 데에 뛰어난 곳이다. 반주만 하는 불평 없는 사원과 편하게 일 하는 것보다 연주하는 사원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회사에게도 득이라는 걸 회사는 안다. 


물론 연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연주할 때가 있고, 반주할 때가 있다. 


영국 왕실과 많은 영국 고위 인사들의 자기 계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심리 치료사 마리사 피어는 긍정적인 태도가 있어야 긍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면서 "나는 나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어 (I am enough)" 라는 말을 되뇌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주할 수 없다면, 반주 밖에는 할 수 없고, 반주 밖에 할 수 없다면 "나는 나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어"라는 말은 그저 자기 위안일 뿐이다.


내가 연주하기로 마음을 먹어야, 내 시간의 우선 순위를 연주에 둘 수 있고, 그러면 내 실력이 올라가게 된다. 내가 나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으려면, 그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시간을 거쳐야 한다. 


반주하기 지겹다고 저절로 연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연주를 하기로 했다면 언젠가는 연주하게 될 것이지만, 연주자가 되기위한 과정까지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나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연주자가 되는 길 뿐이고, 나를 연주할 수 있는 건 나 뿐이다


언제여야 할까, 언제 연주를 하기로 마음 먹어야 할까, 라고 묻는다면, 그건 답이 있다. 반주자에서 연주자가 되기로 마음 먹어야 할 그 때는, 바로 오늘이고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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