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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09. 2023

새지 않는 돈 주머니

각박함은 나에게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토론토의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는데 어떤 노숙자가 멀리서 다가오면서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친다. 내 이름은 데이빗이야. 이틀을 굶었고, 다리는 다쳤어.... 더 듣지 않아도 금전적 도움을 요구하는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주유소나 음식점 앞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캐나다에 온 후로 오랫동안 보아온 흔한 광경이다. 


그런데, 지난 3년간,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그런 분을 만나면 나는 가능하면 얼마라도 드리고 도와드리려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기 어렵다는 거다. 왜냐하면 내 주머니에서 잔돈이 사라진지 몇 년 되었기 때문이다. 코비드를 겪으면서 주머니에서 잔돈이 사라졌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지, 예전 같으면 누구라도 동전을 주섬주섬 챙길 법한데 다른 사람들도 멀뚱멍뚱 보고만 있었다. 


예전에는 신호에 걸려서 정차하고 있을 때 차창 밖에서 구걸을 하는 노숙자에게 줄 동전이 항상 차에 있었지만, 접촉을 멀리한다는 구실로 차창을 내린 지 오래 되었으니 차에도 잔돈은 없다. 바이러스는 지폐에서도 오래 생존하고, 동전 표면에서는 더 오래 생존한다는 연구 결과를 본 이후로는 일상 생활에서도 웬만한 결제는 비접촉인 카드로 하고 현금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내 주머니에는 이제 동전이 없고, 어떨 때는 지폐도 없는 경우도 많다.


카드를 쓰면 좋은 점은 낭비가 없다는 거다. 


단돈 1원도 딴 곳으로 새지 않는다. 새는 돈이 없다니, 돈을 사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 예로부터 더 버는 것보다 새는 곳을 막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돈을 관리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사람의 주머니가 잘 관리되어서 새는 돈이 없는 시스템이 사회적으로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고래가 한 마리가 죽으면 심해 생물들에게까지 풍족한 양분이 공급된다고 한다. 만일 그 고래를 상층에서 상어가 다 먹어 버리면 일단은 상어에게는 최상의 결과로 보이겠지만, 그 결과로 더 작은 생물들에게까지, 심해에까지 양분이 내려가지 않으면, 결국 상어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상어도 생태계라는 큰 틀의 한 고리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모여야 큰 그림이 그려지는 상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계"다. 나도, 데이빗이라는 그 노숙자도 내가 생활하는 '계'에서 연결되어 있을테고, 내가 새지 않는 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그래서 의도치 않게라도 노숙자 데이빗의 고통이 커지면, 그건 언젠가 내가 마주칠 고통이 된다. 


새지 않는 주머니는 더 각박한 사회를 만들 것이니, 나도 곧 그 각박함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 각박함이 나에게만 관용을 베풀지는 않을 거니까.  


각박함의 혹독함은 마주쳐 본 이들만 알 수 있다. 언젠가는 나도 각박함을 마주보고 서 있어야 하는 때가 온다. 나는 나 스스로를 그 각박함에서 구할 수 없지만 또 혹시 아는가 - 다른 이의 새는 주머니가 나를 그 각박함에서 구할런지.


언젠가는 노숙자들도 카드 단말기를 들고 다니는 때가 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새는 주머니를 다시 차고 다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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