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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Mar 16. 2024

로스쿨 1학년 때 무슨 과목이 가장 중요한가요?

우리의 매일을 지배하는 법은 뭘까?

고객 한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첨된 복권과 관련해서 문제가 있다고 하시며 자문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상황을 설명하시고는 이렇게 물어 보셨다. 


"혹시 복권법도 다루시나요?


하마터면 웃을 뻔 했다. 복권법이라니, 아쉽지만 그런 법은 없다. 물론 복권의 발행이나 판매에 대한 법은 있으니 복권법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고객이 말씀하신 류의 분쟁을 다루기 위한 복권법은 없다. 그렇게 설명을 드리니, 그럼, 도대체 무슨 법을 적용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느냐고 물으셨다. 


그 질문을 들으니, 로스쿨 입학 설명회에 빠지지 않는 질문 하나가 생각이 났다. 


나는 몇 년에 한 번씩 한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타리오주 로스쿨 입학 설명회를 연다. 나도 경험한 바가 있지만, 내 경험은 어느 새 오래 되었으니 가능한 한 현재 로스쿨을 다니는 학생과, 그 해 로스쿨에 합격한 학생을 함께 섭외해서 정보를 나누려고 한다. 


1회 설명회 때에는 어머니들 등쌀에 중학생들도 몇 명 왔을 정도였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획하는 자리임에도 학생 본인들 보다 부모님들 관심이 더 높아서, 영어로 진행되는 세미나보다 국어로 진행되는 세미나가 더 열기가 뜨겁다. 


그래도 이제는 로스쿨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예전처럼 어렵지 않아서 로스쿨을 어떻게 준비하고, 각 학교별로 어떤 것들을 요구하는지, 이런 설명에 대한 관심은 살짝 줄어든 느낌이다. 대신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질문이 매 번 빠지지 않고 나온다. 


LSAT 준비는 어느 학원을 갔나요? 교재는 뭘 썼나요?

LSAT 공부는 몇 달이나 했나요?

로스쿨 1학년 때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잠을 잤나요?


뭐, 이 정도는 흔히 예상할 수 있는 궁금증인데, 예상하지 못했으나 매 번 나오는 질문이 있다. 


1학년 때에 가장 중요한 과목이 뭔가요? 


내가 지적재선권으로 시작한 변호사라 그런지 "지적재산권 변호사가 되기 위해 1학년 때 학점을 잘 받아야 하는 과목은 뭔가요?"라는 질문도 나오는데, 뭐, 같은 맥락이라고 보인다. 


질문한 학생이 만일 대형 로펌을 지망하는 학생이라면 아마도 "그런 과목은 없다" 라든지 "모든 과목이 중요하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대형 로펌들은 학생들이 로스쿨에서 어떤 과목을 들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바닥부터 다 다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로펌에서 첫 인턴을 하고서 파트너 변호사에게 그렇게 물었었다. 내가 "다음 번 인턴에 조금이라도 회사에 더 보탬이 되려면 무슨 과목을 듣고 오는 것이 좋겠냐?". 하지만 그 파트너 변호사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었다. "아무거나 네가 듣고 싶은 거 들어. 로펌에 필요한 건 로펌에서 다시 다 가르쳐야 해".


그러니, 원론적으로 말하면 1학년 때는 모든 과목이 중요하다. 아니, 과목이라기 보다는 무슨 과목이든 학점이 중요하다 - 과목은 별 상관이 없다. 적어도 내 향후 직장, 내 향후 연봉만 고려하면 그렇다. 


하지만, 어떤 법이 내 매일의 삶에 가장 중요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거기엔 답이 있을 수도 있다. 


내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은 계약법이다. 


계약법과 관련된 케이스를 배우다 보면, 아, 세상에 두 개인 혹은 두 법인이 만나는 곳에는 항상 계약이 존재하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위에서 말한 복권 관련 문의도 결국 계약법으로 해석하고 처리해야 하는 일이다. 복권 발행자와 복권 구입자 사이의 계약, 복권 공동 구매자 사이의 계약. 문서와 되어 있든, 구두로 된 것이든, 암묵적으로 합의된 것이든, 거기에는 계약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매일은 계약법의 지배를 받는다. 


로펌에서 지적재산권만을, 그 중에서도 특허만을 다루는 변호사를 할 때에는 그렇게까지 계약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적재산권 역시 문서를 벗어나서 돈이 되려면 결국 계약을 통해야 한다. 이제 독립해서 내 사무실을 운영하다보니, 문의 전화 중 대부분은 결국 따지고 보면 반이 훨씬 넘는 건들이 다 계약법에 연관된 것이었다. 


계약법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계약을 제대로 해석할 수도 있고, 계약서를 작성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질문이 나오면 "계약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끔은 로스쿨 학생들 모임에 가서도 그런 질문을 받는데, 계약법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안색이 바뀌는 학생들이 있다. 계약법 학점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계약법은 내가 땅에 발 붙이고 살기 위해 중요하다는 것이지, 내가 좋은 로펌에 들어가고, 높은 연봉을 받고, 원하는 분야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니까. 그런 목적에 다다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대부분의 경우 결국 평점으로 판가를 나는 것이니까. 로스쿨에서 무슨 과목을 듣든, 로펌가서 그 과목으로 인정받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어쨌든 우리는 평생 계약법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만나서 계약법 따질 일이 없는 것이 가장 평안한 삶이라는 건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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