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즈음하여
캐나다에 살면 한 번은 해 봐야 한다는 고등어 낚시. 올해는, 올해는, 하면서 매년 마음을 다잡았지만, 매년 고등어 철이면 몰려드는 일감으로 계속 포기를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올해 기회를 잡았다.
아내와 친구 가족과 그렇게 1,000km 를 운전해서 대서양으로 떠났다. 친구가 미리 예약해 둔 에어 B&B는 뒷마당이 곧 대서양과 이어진 멋진 집이었다. 짧은 휴가지만 알차게 낚으리라, 생각하면서 매일 낚싯대를 드리우던 어느 새벽, 해가 수평선 위로 떠오르며 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이는데, 갑자기 나타난 새 떼가 수면을 스치듯 날아올라 태양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서둘러 옆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지만,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이미 새와 바다와 태양의 조화는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찍고 싶은 장면은 찰나에만 존재했고, 그 순간을 준비하지 않은 손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그 때 깨달았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사진속에 담아내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진작가 한 분은 거의 매일 찍으신 사진을 내게 보내 주시는데, 언제나 작품 속에 생명이 있었다. 그것도 사진 중앙부에 항상 사람이나 새, 다람쥐, 심지어는 꿀벌 같은 작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나는 감탄을 하면서도 워낙 많이 찍으시니 우연히 그렇게 생명체가 찍힌 사진을 골라 보내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직접 찰나의 순간을 놓치고 보니, 그 분은 아마도 같은 자리에서 사진기를 들고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리라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형, 이거 자리잡고 기다렸다가 찍으시는 거죠? 제가 사진을 놓치고 보니 그럴 것 같더라구요"
그 분 말씀이 알아줘서 고맙단다. 멀리 사람이 보이고 새가 날아오면 미리 주위를 살피고, 좋은 배경을 찾고, 그렇게 기다린다고 했다. 늘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사진찍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다 보면 내가 기다리던 것들이 화면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있고, 그때 비로소 셔터를 누른다는 것이다. 그 분이 얻은 사진은 우연이 아니라 준비와 기다림의 결실이라는 걸 알고 나니, 거의 매일 보내주시는 그 사진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기회와 준비와 기다림은 우리 삶에서도 같은 의미를 갖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의 발 앞에 기회는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기다림은 가만히 앉아 있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듯 하다. 유명한 첼리스트인 요요마는 어린 시절부터 매 연습을 무대처럼 여겼다고 한다. 작은 연습에도 온 마음을 쏟으며 마치 지금이 무대 공연인 양 준비하다보니, 갑자기 큰 오디션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흔들리지 않고 평소처럼 연주할 수 있었고, 그렇게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기회는 특별한 선물이 아니라, 그저 준비와 기다림의 당연한 결과였을 뿐이다.
승진의 기회, 새로운 사업의 기회, 혹은 뜻하지 않은 것 같은 만남조차도 기다림 없이, 준비 없이 다가오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때로는 오랜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그래서 그 시간이 헛되게 보이는 때가 있지만, 그 시간이 쌓여 기회의 문을 여는 순간을 가능하게 만든다. 우연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시간을 쌓아 올리는 태도의 결과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기다림 속에서 오늘 하루의 작은 준비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내일의 기회를 맞이하는 유일한 길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25년 끝자락, 지난 11개월을 돌아보면서, 또 내 나이를 생각하면서, 살짝 조급해지는 나에게 해 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