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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로스쿨, 호주 로스쿨을 간다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by 신광훈

남의 나라에 가서 살 때에는 3가지 직종에서 적어도 한 사람은 친한 사람을 만들어 놔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첫째는 의사, 둘째는 변호사, 셋째는 자동차 정비사다. 모국에 살아도 그렇지만, 타지에 나가 살다보면 이 세 직종의 도움이 절실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한국 사람이든, 중국 사람이든, 인도 사람든, 이란 사람이든, 캐나다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많은 1세들은 그들의 자녀가 의대나 로스쿨에 가기를 바라게 된다.


캐나다로 옮겨오지 않더라도, 한국에 살고 있는 지인들 중에는 아들이나 딸을 캐나다에서 변호사나 의사로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미국에 밀려 캐나다는 선택지에 들지 못했는데, 요즘은 미국보다 캐나다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본인들은 한국에 있지만, 자녀들을 캐나다로 보내서 의대나 로스쿨을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캐나다는 미국과 비교하면 의대나 로스쿨이 몇 개 없다보니, 캐나다에서 의대나 로스쿨을 가기는 매우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의대나 로스쿨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들은 미국이나 다른 연영방 국가 (호주, 영국 등)의 의대나 로스쿨을 간다. 영연방 국가로 유학은 가는 경우는 캐나다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있어야 유리하다. 졸업 후 캐나다로 와서 자격을 증명하고 시험을 통과하면 캐나다에서 의사, 변호사 자격을 딸 수 있다.


특히 영국의 로스쿨은 예전의 한국처럼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로스쿨에 지원할 수 있으니 (대학을 졸업하고 가는 로스쿨과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가는 로스쿨이 다 있다), 굳이 대학교 4년을 다른 공부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빠르게 변호사가 되고 싶다면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로스쿨을 나와, 다시 캐나다에 와서 자격 시험을 통과하면 된다. 몇 가지 추가로 공부해야 할 과목들이 있지만, 4년을 벌었으니 그다지 아까운 시간은 아니다.


그런데, 외국 로스쿨을 졸업하고 캐나다로 돌아오는 경우의 문제는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도 연수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변호사 시험만 통과하면 변호사가 되는데, 캐나다에서는 졸업 후 1년간 다른 변호사 밑에서 수습 기간을 거쳐야 변호사가 된다. 한국으로 따지면 사법연수원쯤 되는 과정이다. 근데, 이 자리를 구하는 것이 로스쿨 들어가기보다 어려워서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연수를 못해 변호사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미국이나, 영국이나, 호주의 로스쿨을 나온 사람들은 실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관이 있어서 (캐나다에서 합격하지 못해서 다른 나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캐나다 로펌들은 캐나다 로스쿨 졸업생을 선호한다. 그러니, 캐나다 로스쿨 졸업생도 구하기 어려운 연수 자리를 외국 로스쿨 출신이 구하기는 더 어렵다. 그러면 규모가 작은 로펌에서 무료로라도 연수를 하려고 한다.


무료가 웬말이냐 - 로스쿨까지 졸업하고 열정 페이가 말이 되느냐 - 캐나다에도 최저 임금이 있지 않느냐, 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어느 직종이든 일을 배우기 위해 연수를 하는 과정에서는 이 최저 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무급이라고 해도 다른 나라 로스쿨 출신은 연수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사무실에서도 1년에 한 번 정도 연수생을 구하는데, 이 자리는 기본적으로 무급이다. 하지만, 공고가 나가면 많은 수의 이력서가 들어오고, 그 중 99%는 영국이나 호주, 아니면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캐나다에서 로스쿨을 졸업하면 그래도 돈을 받고 일하는 자리를 구하기가 더 쉽다는 뜻이겠다.


하지만, 무료면 어떠랴. 열 달만 무급으로 버티면 한 분야의 실무를 처리 할 줄 아는 캐나다 변호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생긴다.


젊은 변호사들은 대부분 대형 로펌에서 많은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작은 로펌에서 시작해서는 큰 물로 넘어가기는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반대로 큰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 나중에 좀 더 작은 로펌의 고위직으로 가거나 독립을 하기가 쉽다. 큰 로펌은 이미 충분한 연수생과 변호사를 보유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 오히려 사람을 쳐 내야 할 판이라 확실하게 실력이 검증된 경우가 아니면 외부에서 변호사를 데리고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 로펌에서 연수를 시작하려는 졸업생들에게는 면접시에 항상 경고를 한다. 작은 곳에서 시작을 하면 큰 로펌으로 가기 어렵고, 연수 후에는 다른 곳에 취직이 되지 않아서 바로 개인 사무실을 차리는 것이 최선인 경우가 많으니, 혹시라도 나중에 대형 로펌에서 일하고 싶다면 다시 생각하라고.


그래도 그들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나도 알고 그들도 안다. 이렇게라도 일단 변호사가 되지 않으면 지난 3년간 가족과 떨어져서 다른 나라에서 보낸 시간과 등록금으로 바친 그 많은 돈이 다 헛 것이 되니까.


물론 작은 곳에서 시작하면 좋은 점도 있다. 업무를 빨리, 그리고 많이 배운다는 것이다. 똑같이 1년을 투자한 경우, 작은 로펌에서 연수를 받으면 개인 사무실을 차려 운영할 정도의 지식을 쌓을 수 있지만, 대형 로펌에서 연수를 받으면 1년간 배우는 것이 고작 복사기 사용법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우리 로펌에서 연수를 한 영국 로스쿨 출신 한 명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너무너무너무 기업법 변호사가 하고 싶었는데 캐나다에서 두 번이나 떨어져서 할 수 없이 영국 로스쿨을 갔다. 그 후 캐나다로 돌아와 우리 로펌에서 연수를 마친 후에 7-sisters라고 불리는 대형 로펌 중 한 곳으로 이직을 했다. 본인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개천에서 용 난 것에 필적할 만한 결과였다. 우리처럼 작은 로펌 출신이 그런 대형 로펌으로 이직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이 친구가 떠나면서 나중에 말해 주기를 면접에 온 것은 대부분 갓 연수를 마친 신참 변호사들이었고, 본인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다 대형 로펌 연수생 출신이라 의기소침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단체 면접에서 실무를 물어보는데, 본인 말고는 아무도 일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답변하는 사람이 없더라는 것이다. 오히려 면접을 보는 변호사들이 어떻게 연수 기간 열 달 동안 그 많은 것을 다 배웠냐고 물어보더란다. 그 대형 로펌에서는 마침 기업법 부문을 확장하면서 기업법 실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자기가 뽑힌 것 같다고 했다.


잘 가르쳐 줘서 고맙다고 했으나, 그건 기업법 변호사가 너무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그 친구의 뜻이 길을 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은, 늘 통하지는 않지만 과연 틀린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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