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곳에 맞는 특성을 갖추기
중형이상 혹은 대형 로펌에 취업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로스쿨을 다니면서 학점만큼이나 신경쓰는 사항은 자원봉사 이력을 포함한 소위 학업 외 활동 (extracurricular activities)이다. 학외활동, 특히 자원봉사 경력은 로스쿨 입학은 물론, 로스쿨을 다니면서 어딘가 경력이 될 만한 일을 해 보려는, 그리고, 졸업 후에 로펌에 취직을 하려고 하는 모든 로스쿨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력서에 넣는 사항이다. 로펌 취업시에도 반드시 검토하는 항목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로스쿨에서 공부하는 동안은 '변호사들의 자원 봉사는 사회 환원 활동의 일부여서 대형 로펌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와 같은 말을 많이 듣는다. 나도 주위 분위기를 보고는, 아, 이건 안하면 안 되나보다... 하는 생각에 판례 읽을 시간도, 잠잘 시간도 부족했던 와중에, 게다가 영어도 많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가정 폭력으로 보호처를 필요로 하는 여성들에게 보호처를 제공하는 자원 봉사기관에서 일을 했을 정도다.
그런데, 로펌에서 일한 내 경험에 비추어 보거나, 다른 로펌에 근무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로펌들은 소속 변호사들의 자원 봉사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대형이든 중형이든 소형이든 로펌의 규모가 달라도 마찬가지다. 신입 변호사들은 첫 3년 정도 일정한 자원 봉사 시간을 채우는 것을 의무로 하는 로펌도 있지만, 그건 회사의 이름을 위한 것이고, 게다다 자원봉사를 한다고 본인이 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 변호사들은 대부분 귀찮아한다. 그렇다고 로펌에서 특별히 지원을 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로스쿨 시절의 자원봉사가 로펌의 채용 결정에 중요할까? 왜 그럴까?
그건 자원봉사 경력이 로스쿨 학생들에게는 공작의 꼬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공작의 꼬리는 어느 꼬리든 아름답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수컷 공작의 꼬리보다 아름다워야 암컷 공작을 유혹하기 쉽다. 대신 그 거추장스러움, 다시 말하면 생존에 미칠 부정적 영향 (천적에게 희생될 확률) 때문에 크고 아름다운 꼬리는 수컷 공작에게는 큰 비용이다.
영양 상태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망가지는 부분도 꼬리다. 암컷 공작 입장에서는 수컷의 꼬리만 보아도 수컷이 먹이를 얼마나 잘 구하는지에 대한 생존 능력 (사람으로 친다면 요즘은 경제적 상태 정도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을 짐작할 수 있으니, 수컷을 평가하는 좋은 지표가 된다. 반대로 수컷 입장에서는 암컷이 먼저 보는 것이 꼬리일테니 관리를 소홀히 할 수도 없고, 게다가 꼬리 상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 현재의 영양 상태를 숨기기도 어렵다.
다리가 한 쪽이 없거나, 날개 한 쪽이 상처를 입었다면 당연히 짝짓기에 있어서 감점 사유가 되겠지만, 그런 모든 정상 상태를 유지하고도 남는 에너지가 있어서 생존에 불리한 꼬리까지 가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암컷의 선택을 받기가 유리해진다. 꼬리로 인해서 여러가지 부담이 높아지지만, 그 모든 부담에도 구하고 암컷 공작을 유혹해 얻는 성과가 그 모든 대가를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그렇게 평가받는 시스템 안에 놓여 있기 때문에 수컷 공작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
수컷 공작이 꼬리대신 아름다운 볏을 가꾼다면 암컷 공작대신 암탉은 관심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수탉의 삶을 원하면 볏을 가꿀 일이다. 하지만, 볏으로 암컷 공작을 유혹할 수는 없다. 이미 암탉은 수탉의 볏을, 암컷 공작은 수컷 공작의 꼬리를 보도록 진화되어 있다. 이미 정해진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은 수컷이든 암컷이든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원 봉사라든지 과외 활동이라든지 하는 이력서 기재사항들은 이렇게 공작의 꼬리 역할을 한다. 얼마나 많은 봉사활동을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위치에서 하고 있는지를 보면, 이 학생이 간신히 로스쿨 생활을 견뎌내고 있는지, 여유있게 이어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학점이 C라면 어떻게 자원 봉사에 시간을 쓸 수 있겠는가. 그리고 같은 학점이라도 봉사 활동의 양적, 질적 차이로 그 능력의 차이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물론 가장 멋진 꼬리를 장착했다고 생각했지만 선택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버드나 예일 대학의 로스쿨은 평균 LSAT 점수가 180점 만점에 170 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 사는 공부 잘하는 한 한인학생이 LSAT을 보았는데 168점이 나왔었다. 이것만해도 매우 높은 점수이지만, 예일 로스쿨이 가고 싶었던 이 학생은 공부를 더 하고 다시 LAST 시험을 보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169점을 받았다.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공부하고 드디어 170을 받고 예일대 로스쿨에 지원했다. 일단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면접에 갔는데, 면접관이 서류를 살펴보면서 그러더란다 – 이거 2점을 높이느라고 시험 준비를 했을 시간에 자원 봉사를 했으면 경쟁에 더 유리했을 거라고. 결국 그 학생은 예일대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러니, 상대가 뭘 원하는지를 잘 파악할 일이다. 공작을 원하는 곳에는 멋드러진 꼬리를, 닭을 원하는 곳에는 잘 생긴 볏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