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겁먹지 말자
나는 몇 개의 모임에서 멘토링을 한다. 물론 내 멘티는 대부분 캐나다 로스쿨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다. 딱 짚어서 내가 했던 지적재산권 변호사를 목표로 하는 사람도 매년 1명은 있지만, 그래도 멘티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에서 늦게 캐나다에 온 1세, 그리고 캐나다 조기유학이나 이민을 통해 정상적인 과정과 나이로 캐나다 대학을 졸업하는 1.5세.
이들의 관심사는 당연히 어떻게 로스쿨을 들어가고, 어떻게 좋은 학점을 받고, 어떻게 원하는 로펌에 들어가는지다. 하지만, 나이가 있는 사람들일수록 변호사가 된 후에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궁금해 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가장으로서 생업을 제쳐두고 어렵게 로스쿨을 졸업했는데 먹고 살 수 없다면 문제 아닌가.
사실 변호사로서의 직업 경로는 다른 분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캐나다에서 변호사가 되면 보통 로펌에 취직하거나, 은행을 비롯한 일반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3-4년을 일하면서 그 분야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면 이제 3가지 정도의 선택지가 생긴다.
하나는 지금 있는 직장에서 끝까지 가 보기로 하는 거다. 로펌이라면 파트너 변호사를 노려보는 것인데, 쉬운 길은 아니다. 내가 로스쿨을 다닐 때에는 대형 로펌에서 6년 정도 일하고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면 파트너 변호사가 된다고 했는데, 내가 취직을 할 때에는 8년으로 늘어나 있었고, 이제는 12년 정도 일해야 대형 로펌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그냥 12년을 버티면 되는 게 아니라, 3-4년 동안 쌓인 변호사들 중에 한 명 정도만 파트너가 되는 추세라 수십대 일의 경쟁을 뚫어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자기 사무실을 여는 것이다. 월급쟁이를 벗어나 사장이 되는 것이다. 나도 45년만에 월급쟁이를 천산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던 경험이 있지만, 이 길도 쉬운 길은 아니다. 이 선택지를 택하는 업무 시간의 많은 부분은 변호사 일이 아니라 행정업무에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업이 정착될 때까지 월급쟁이 시절에는 알 수 없던 마음 고생을 매일 해야 한다.
마지막 하나는 더 많은 연봉을 받고 다른 회사나 로펌으로 이직하는 것이다. 20대에 변호사가 된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 경로를 택한다. 한 분야에서 3-4년 정도되면 일은 혼자 처리할 수 있지만 연봉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니, 여러 회사에서 탐을 내는 시기다. 그런데, 이 과정을 선택하더라고 결국은 위 두 가지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하니, 나이가 좀 있는 경우에는 이 길을 추천하기 어렵다. 돌아가는 길이니, 차라리 위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나는 대형 로펌을 나와 독립한 경우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차피 독립해야 할 거라면 1년이라도 빨리 하는 것이 더 좋았겠다 싶다. 대형 로펌을 다니면서 받는 주위의 부러움이나 평가는 사실 실속은 없었다. 로펌은 고객에게는 내 시간당 30만원, 50만원을 청구하지만, 내가 그 보수를 받는 건 아니었다. 젊었을 때는 주위의 평판이 중요할 지 모르지만, 나이가 좀 있는 1세라면 체면이나 겉으로 보이는 보기좋음 보다, 실제로 내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제 로스쿨을 준비하면서 너무 멀리 볼 필요는 없다. 로스쿨을 다니면서 경로를 바꾸는 학생들도 수두록하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알지도 못했던 분야에 길이 열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 보면 변호사의 좋은 점은 사회 어디에든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러니 내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길을 만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앞 길에 안개가 짙다고, 길이 몇 갈래인지 모르겠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