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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끼리는 싸우지 마라

모의 재판의 교훈

by 신광훈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로스쿨에서는 대부분 1학년 2학기 혹은 2학년 1학기에 배운 내용을 토대로 모의 재판을 치르게 된다. 기존 사건을 참고로 매우 정교하게 원고와 피고의 입장이 잘 균형잡힌 가상의 사건이 주어지고, 각 학생들은 원고 측 혹은 피고 측을 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건 수업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것어지만, 누구도 빠질 수는 없다. 기존 수업 따라가기도 벅찬데, 관련 법률과 따로 판례를 찾아보고, 논리를 만들어 모의 법정 준비를 해야 했다.


보통 이런 모의재판은 후원해 주는 로펌이 있고, 그래서 그 로펌의 이름을 따서 “xxx competition” 등과 같이 이름을 붙인다. 경쟁을 통해 최적적으로 한 팀의 원고 대리인과 한 팀의 피고 대리인이 선발되어 최종 결승을 치르는데, 최종 결승 재판은 보통 후원하는 로펌에 가서 하게 된다.


재판장는 보통 3명 정도로 이루어지는데, 당연히 해당 로펌의 소송 변호사 중에서 경험있는 사람들이 맡는다. 여기서 좋은 인상을 주는 학생은 다음 해 여름 인턴으로 채용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게다가 보통 모의재판을 후원하는 로펌들은 대형 로펌들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일종의 면접인 셈이고 소송 변호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과거 급제에 맞먹는 것이라 모의 재판 준비에 공을 들인다. 우리 로스쿨 같은 경우에는 한 학년에 300명이 넘는 학생이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 두 명을 뽑는 결승에 올라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우리 학년에서 우승을 한 동기는 지금 그 로펌에서 소송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피고와 원고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서로를 지칭할 때 “friend”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상황을 가정해서 번역을 해 본다면 “재판장님, 원고측 변호인이 주장하는…” 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장님, 제 친구가 주장하는…”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원고 측 변호사와 피고 측 변호사라면 서로 적군아닌가. 어떻게 친구란 말인가. 한국의 TV 드라마에서 보던 법정에서의 그 살벌한 기 싸움과 법정 밖에서 벌어지는 감정 싸움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교수께서 설명하시기를 "변호사는 고객의 입장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잠시 서로 상반된 위치에 서 있을 뿐이고, 변호사 일을 하다보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심지어는 오전의 사건에서는 적이지만 오후의 사건에서는 동지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어떤 입장을 대리하든 그것은 변호사간의 다툼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캐나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소송 변호사들이 정해져 있다. 그러니, 내가 일하던 지적재산권 로펌의 소송 변호사들은 항상 법정에 가면 상대방으로 만나는 다른 로펌의 변호사들이 정해져 있고, 법정에서 보면 참 치열하게 싸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법정 밖에서는 서로 가든 파티를 함께하고 술자리를 함께하는 친구들이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변호사로 일한 지 벌써 10년이 넘으니, 이 말이 이해가 된다. 실제로 상대방 변호사를 Friend라고 부르다 보면 적대감은 잘 생기지 않는다는 걸 경험한다.


캐나다는 한국에 비해 소송이 흔한데, 자기 변호사를 고소하는 고객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받지 못했을 때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자신의 이전 변호사를 고소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변호사 비용만 낭비하고 끝나지만, 어쨌든 캐나다에서 가장 소송을 많이 당하는 직업 중 하나가 바로 변호사고, 변호사 생활 10년이면 소송 한 번쯤 당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로 알려져 있다.


내 고객 중에도 물론 그런 고객이 있었다. 그 때 나를 고소했던 고객을 변호한 (그러니까 나를 고소한) 변호사와 나는 그 사건을 계기로 친구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그 변호사에게 주고, 그 변호사도 본인이 다루지 않는 일에 나를 추천한다. 나를 고소했고, 그래서 그 때문에 시간도 많이 빼앗겼지만, 감정은 없다. 그건 일일 뿐이니까. 기왕 누군가를 추천을 한다면 일 잘하는 변호사를 추천해야 내가 욕을 먹지 않는다. 그 뿐이다.


상대 변호사가 개인적으로 악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도 물론 있었다. 그 때 원로 변호사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하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상대방이 아마추어로구만'


그렇다. 반대편 변호사에게 나쁜 감정을 드러내면 아마추어 취급을 받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고객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다. 내 변호사가 상대방 변호사와 friend라로 부르는 상황이 어이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고객은 흘러가지만, 변호사끼리는 또 보게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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