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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Dec 14. 2021

캡틴 아메리카... 노!

영웅인가 빌런인가

 아침 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다시 5분, 10분 늦추다가 결국 피곤함에 찌든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한다. 얼굴을 힘껏 찌푸리고, 평일 아침에 항상 가는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멈춘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그 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우린 커피를 마신다고 하지 않고 수혈한다고 표현한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피로를 풀 시간이 없어 누적되고, 몸은 지쳐가고, 일은 해야겠으니 각성제가 필요로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상황에 현대인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영웅은 아메리카노다. 간단히 사 오기 편하며, 값도 저렴한 데다 주변에 널린 게 카페니까.


 이렇게 각성제를 먹어가면서까지 일을 시키는 사회의 뿌리는 ‘경쟁’이다. 어려서부터 우린 경쟁했다. 같은 반 친구와 놀았지만, 뒤돌면 냉정하게 싸웠다. 대학교 가면 실컷 놀고먹으라 했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취업할 때까지도, 하고 나서도 치고받았다. 소름 끼치는 사실은 연애도, 결혼하는 것도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눈치싸움이다. 이러다 죽는 것도 경쟁할 기세다. 약육강식이 세상의 이치라 한들, 한국은 ‘경쟁’이란 단어만 들으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뛰어들 준비를 한다. 친한 사람도 제껴야 하는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경쟁에서 멈춤은 없다. 그로 인한 누적된 피로만 있을 뿐.


 사회에서 이기기 위해 뛰어들다 ‘피로’라는 곤욕에 빠지면, 아메리카노는 우리에게 영웅처럼 달려오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린 매일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영웅은 항상 우릴 구해줄 거야’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채로 말이다.


 이상함을 느꼈어야 한다. 절대적인 믿음! 이 영웅은 우리에게 중독성을 가지게 한다. 처음에 커피에 입문하면 달달한 라떼를 먹다가, 아메리카노에 정착한다. 그리고 커피가 몸에 일부분인 양 가지고 다닌다. 없으면 허전하고 매일 먹어야 하는 존재. 점점 우리가 사전에서 정의하는 ‘영웅’인지 의심이 든다. 그때 살려달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우리의 몸은 아메리카노를 영웅이 아닌 빌런으로 받아들인다. 위장과 뇌, 신경계, 각성해버려 감지 못하는 눈, 덜덜 떨리는 손까지... 몸을 카페인의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노는 영웅일까 빌런일까.


 고등학교 2학년, 중간고사를 준비하다 에너지 드링크 2캔을 마구잡이로 마시고 시험공부를 했다. 결론은 다음 날까지 한숨도 자지 못했고, 시험은 망쳐버리고 말았다. 카페인을 한꺼번에 마셔서 그런지 위장은 뚫린 것처럼 아팠고 머리는 누가 도리깨로 계속 두들기는 느낌이었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지? 눈뜬 좀비 상태로 걸어 다니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메리카노, 그 속에 카페인은 경쟁사회에서 날 구원해주지 못하는구나.




 경쟁 싸움에 이기는 방법은 때에 따라 다르고 죽는 순간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영웅 찬스로 아메리카노를 데리고 오는 건 슬슬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은 영웅이라 생각하고 마시지만, 몸에는 빌런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영웅과 빌런이 되는 아메리카노를 적당히 활용하면 경쟁에서 이기는 나름의 방도가 될 순 있겠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마냥 사람들을 탓할 수 있으랴. 이 빌어먹을 사회를 진정시키지 않는 이상 비정상적 카페인 수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영웅인지 빌런인지 모를 아메리카노가 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현대인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당신이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부디 영웅이길 바라며... 당신의 눈동자의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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