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만의 인생 시간표가 있다

앞서거나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다

by 심상 중년심리

중년에 깨닫는 인생의 진짜 의미, 비교하지 말고 내 속도로 살아가기



누군가는 20대에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40대에 열매를 맺으며, 또 누군가는 60대에 비로소 자기 인생을 시작한다. 빠르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늦었다고 다 나쁜 것도 아니다.


세 친구의 이야기

A는 삼성전자에 입사해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구조본에 발탁되었고, 승진을 거듭하며 임원으로 직장생활을 마쳤다. 외관상으로는 화려한 커리어지만, 그의 속내는 달랐다.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치열한 내부 경쟁이 있어서 파란만장한 곡절이 있었고, 몇 번이나 낙마 위기를 겪었으며, 그때의 스트레스로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힘든 과정을 인내하며 위기를 넘겨 겨우 임원이 되었다고 그는 자조했다.


B는 중소기업에 취업해 영업 일선에서 뛰며 사장까지 올랐다. 오랫동안 회사를 이끌 줄 알았는데, 회장이 아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영업 과정에서 지출한 섭외비를 문제 삼은 회장의 아들은 감사를 진행했고, B는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회장과의 관계에 환멸을 느낀 B는 받았던 회사 주식도 원가 수준으로 되팔았다. 그 뒤로도 불운은 계속되었다. 공장부지에 투자했다가 맹지로 판정 나면서 큰 손실을 입었고, 친구 회사에 투자했다가 부도로 휴지 조각이 되었으며, 주식 투자에서도 실패했다. 인생 전반기에는 혼신의 힘을 쏟아 성취를 이뤘지만, 후반기는 예기치 않은 실직과 잘못된 투자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친구 C는 명문대를 나와 단자사에 입사했다. 하나은행의 전신이었던 단자사는 당시 고액 연봉으로 명문대 출신들이 몰리던 곳이었다. 단자사는 기업체에 단기자금을 고금리로 대출하는 사업을 했는데, IMF 때 대기업 몰락과 함께 부도를 맞았다. 30대 후반에 직장이 부도난 것은 큰 충격이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졌다. 그는 보험 설계사가 되어 친구와 선배를 찾아다니며 보험 가입을 부탁했다.

그러던 C가 40대에 갑자기 숲 해설가로 변신했다. 곤충과 야생동물에 대한 학습 자료를 만들어 학교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조류 세미나에 초청받아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제법 넓은 공간에 직원도 네다섯 명 있었다. C는 자연생태 전문가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세미나 내용도 전문적이어서 참석한 열 명의 선생님들은 집중해서 강의를 들었고, C의 표정에도 자부심이 느껴졌다.


획일적 기준으로 살아온 시대

중년이 된 우리 세대는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넘어가던 시절을 살았다. 1980년대 '국민소득 천 불 달성'이라는 구호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국민소득이 3만 불 수준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만 해도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산업화 시기에는 사회적 성공이 거의 유일한 미덕처럼 여겨졌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학생 때는 성적이, 졸업 후에는 좋은 대학과 대기업 입사, 그리고 임원 승진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졌다. 부모님께 효도하려면 1등을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살았다. 남보다 앞서야 하고, 남보다 높이 올라가야 하며,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성공한 삶이라고 믿었다.


고등학교 한 학년 정원이 480명이었는데, 월말고사를 보면 1등부터 480등까지 학교 복도에 큰 글씨로 성적표가 붙어 있었다. 분발하라는 메시지였겠지만, 중하위권 학생에게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주었다.

같은 반 친구 중 서울대에 30명 정도 진학했고, 사립대 등록금이 비싸 지방대에 진학한 친구도 몇 명 있었다. 나도 사립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항상 서울대 친구들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가졌다. 대학 시절 서울대 친구를 만나면 괜히 위축되었고, 서울대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했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인생 최대의 실패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다

하지만 중년이 되어 돌아보니, 그 기준이 꼭 옳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다. 남보다 빨리 가는 것이 목표도 아니고, 남보다 높이 올라가는 것이 목적도 아니다. 각자에게 맞는 속도로, 각자에게 맞는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인생에는 자기만의 시간표가 있다. 남의 시간표와 비교하며 조급해할 필요도 없고, 뒤처졌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일 이유도 없다. 내 시간표대로, 내 속도로, 내 길을 가면 된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는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스스로 인정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즐겁게 살고, 내가 가진 만큼 나누고, 할 수 있는 만큼 베풀며 살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은 86세다. 나는 지금 중년이다.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가 수십 년이나 남아 있다. 그 페이지를 어떻게 채울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C처럼 40대에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도 있고,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더 성숙한 삶을 살 수도 있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는 이제 그저 내 인생의 한 장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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