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고통일 뿐, 하나님의 의미는 없다 그저 스스로 혼자 견뎌야 한다
고통은 고통일 뿐, 특별한 은혜는 아니다 스스로 혼자 견뎌야 한다
목사나 스님 등 종교인들 중에는 고통이 은혜라고 설교하는 이들이 있다.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거나 신의 섭리가 있다는 것이다. 고통 속에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설교를 들으면, 고통을 겪은 사람을 위로하려는 뜻으로 한 말이겠지만, 심한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머릿속으로만 고통을 이해한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은 고통이고, 은혜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계획하는 의미도 없다.
아내는 11년간 암으로 투병하다가 마지막에는 척추로 암이 전이되어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척추로 암이 전이되면 극한의 고통이 따른다. 모르핀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통증은 하루에 몇 번씩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그 통증이 시작되면 거의 발작적으로 까무러쳤다. 나는 그 고통스러운 모습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아내는 모태신앙으로 죽는 순간 까지도 하나님이 살려주신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교인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까무러칠 정도의 극한의 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고통에 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고, 고통이 무슨 은혜란 말인가.
11년간 투병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임종의 시기도 대략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아내가 임종 호흡을 시작할 때 공황 상태에 빠졌다. 호스피스 병동을 밤새도록 빙빙 돌았다. 아내가 떠나고 난 뒤에는 우울과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아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 나만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리운 감정들이 밀려왔다. 9년간은 직장에 다니면서 아내를 간병했고, 마지막 2년은 아내와 함께 요양원에서 생활했다. 할 만큼 했지만, 죄책감은 심했다. 조금 더 잘 간병했으면 아내가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한 후회와 미련이 많았다.
우울과 공황은 머릿속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슴으로 파도처럼 쏟아부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울한 감정이 확 덮쳐왔다. 그 감정에 빠지면 자살할 것만 같은 생각에 집 밖으로 나가서 무조건 걸었다. 하루에 3만 보를 걸은 일도 많다.
아침에 두 시간 걸고 할머니 식당에 가서 막걸리 반 병을 마셨다. 아침부터 막걸리를 마시는 나를 할머니는 애처롭게 바라보고 계셨다. 점심에도 소주 한 병을 마셔야 했고, 저녁에도 소주 두 병을 마셔야 잠이 왔다.
떠나간 아내는 떠났지만, 살아남은 나도 극심한 고통과 우울에 빠져 있었다. 그때는 터널에 갇혀서 빛이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빛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무엇인가 남은 것이 있지 않을까
아내가 떠난 뒤 5년이 지났다. 이제는 냉정하게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났다. 아내의 죽음과 내가 겪었던 우울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은혜는 절대로 아니다. 무슨 고통이 은혜가 될 수가 있겠는가. 다만 고통의 시간 가운데서도 그래도 무엇인가 나에게 남는 것은 있지 않을까. 나를 돌아보았다.
결국 인생은 혼자다
아내는 암 투병의 11년간 혼자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가장 힘든 것은 극심한 통증을 겪는 아내를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혼자다. 고통을 받을 때 주변에 가족도 친구도 있지만, 결국 고통도 아픔도 외로움도 혼자서 견뎌야 한다.
내 감정에 빠져있었다
11년간의 긴 간병 동안 병원 생활과 입원을 모두 함께 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아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아내를 보냈기 때문에 갖는 감정이긴 했지만, 돌아보면 너무 지나치게 자책감이라는 골짜기에 빠져 있었다. 내 감정 속에 빠져서 스스로를 슬프게 하고 스스로 괴로워하는 면도 있었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
아내와의 사별이라는 상황에 대해 남과 대화하거나 상의하지 않고 혼자 고립된 성에 갇혀 있었다. 아내가 떠난 것은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혼자 고립된 성에 빠져서 우울과 공황 속에 수년간 갇혀 있는 것은 잘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홍천집을 떠나 춘천에서 하숙하며 부모로부터 독립되었다. 혼자 살면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혼자 해결하고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러한 삶의 태도가 아내의 사별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나 혼자 스스로 고립되어 혼자 해결하려 하며 혼자 힘들어했던 것일 수도 있다.
죽음에 대한 깨달음
아내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나도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은 우리 곁에 있는데, 우리는 죽음이 절대로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죽음과 노화는 나이가 지나면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기 쉽다. 내가 돈과 욕망에 대해서 많이 비우는 전환점이 되었다.
겸손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암에 걸리면 그동안 쌓아왔던 삶은 다 사라지고 죽음과 맞서야 한다. 아내가 암에 걸렸을 때 건강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돈도 마찬가지다. 한순간에 다 사라질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건강하게 살아온 삶에 대해 감사하고 그래서 겸손해진다.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비록 은혜는 아니지만, 삶을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무언가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