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의 해고통보를 보고, 한동안 멍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끝인가? 나의 10년의 커리어가 저 강제적인 통보 하나 때문에 단절되는 건가?'
'일말의 언지없이 입사 하루 전에 해고통보를 하는게 정상적인 뇌를 가진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일인가?'
등등, 머릿속은 터질것처럼 복잡해져 움직이지도,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노트북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매니저의 왓츠앱 콜이 걸려왔다. 마지막까지 이메일이나 메세지와 같은 기록을 남기지 않고 후딱 일처리를 하겠다는게 뻔히 보여 콜을 거절하고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이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메일로 대화하자."
그리고 나는 매니저의 이메일에 관련된 HR 메일 주소들을 넣고, '지금 이 해고통보는 한국 노동법에도 위법이며 사회적 통념에도 크게 위배된다.'는 메일 내용을 적어 보냈다. 내 메일을 봤는지, HR직원이 나만 수신자로 넣어 따로 이메일을 보내왔다.
'딱총씨, 미안합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습니다. 당신의 채용관련 문제는 당신 매니저와 해결하길 바랍니다.'
책임감 없는 매니저에 책임감 없는 HR이라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매니저가 나만 수신자로 넣어 '너 해고야. 미안해.'라고 짧게 말하고 끝내는 메일 따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아직 접속이 되고있던 회사 내부망에 들어갔다. Korea team 리스트에는 이 모든게 몰래카메라였다고 말하듯 나의 사진과 이름이 박혀있었다.
'딱총, MARKETING MANAGER, KOREA'
그리고, 나를 한번 더 놀리듯 CEO가 보낸 입사축하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딱총씨, 00회사 CEO 000입니다. 우리 회사에 온걸 환영하며, 우리 회사는---계통의 선두회사이며~~'
길게도 왔다. 이외에도 IT에선 노트북에 내부망 프로그램 설치하는 법, 회사 교육 자료 듣는 법등 계속해서 회사 입사와 관련한 웰컴 및 소개 메일들을 보내왔다.
'하,,, 사람 한명 한명뿐만 아니라 회사 자체가 개판이구나.'
모든 절차 및 소통이 이상했기에, 이 일련의 해고가 임원진이 아닌 아래 중간 관리자인 매니저 선에서 독단적으로 행해진 일일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 바로 내부망의 조직도를 검색하여 본사 HR 본부장과 CEO를 찾았다. 그들의 메일주소를 찾은 후 HR 본부장을 수신인으로 하고, CEO 및 나를 빨리 해고하려던 그 매니저와 인사담당자들을 모두 참조로 넣었다. 그리고 메일 제목을 적었다.
'부당해고에 대한 공식 입장 요청, (딱총, 마케팅 매니저, 코리아)'
난 메일에, 나의 면접 과정 및 모든 채용절차가 끝나 근로계약서를 쓴 날까지의 모든 스케줄을 적고, 내가 현재 내부망에도 접속이 가능한 직원임을 켭쳐 이미지를 통해 보여줬다. 그리고 같은 날 매니저는 해고통보를 하고, HR은 입사를 축하한다는 웰컴메일을 보냈고, 심지어 IT에선 온보딩 프로세스까지 이미 시작한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는, 나의 부당해고에 대한 회사의 공식 입장을 요구했다.
부당해고를 당하고 내가 메일을 보낸 날은 금요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하루가 지난 토요일이다. 아직 그들의 답장은 없다. 내가 메일을 보낸 후, 그들이 진행한 일은 내부망에 등록된 내 계정을 삭제해 나의 접속을 막은 일이 전부다.
이 재앙이 시작된 이틀 새에 내 피부는 스트레스로 흙빛이 되었고, 몇분 간격으로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까먹고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해리성 기억상실증으로 보인다.
나는, 현재 내 모습을 지켜보며 묵묵히 힘을 주는 아내가 있고 다음달에 태어날 아이가 있다. 이런 놈들 때문에 정신과 건강을 해칠 시간도 아깝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아내가 옆에 와 말했다.
"3개월 출산휴가 후에 내가 바로 복직해서 수입을 만들어볼게. 너무 걱정하지마."
아내의 말에 눈물이 나올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부당한 해고통보를 받은 어제는, 출산예정일로부터 30일 남은 날이었다. 이 회사 때문에 아내가 작게 준비했던 아이를 만나기 D-30 이벤트도 함께 즐기지 못했다. 그 호텔에서 내가 한거라곤 밤새 노트북으로 이메일을 쓰고, 침대에서 경기를 일으키며 깨기를 반복한 것 뿐이었다.
아내는 작년에 몸이 심하게 아파 큰 수술을 했다. 아이가 생길 확률도 희박한 상황이었기에 곧 만날 우리 아기가 생긴건 사실 기적이었고 축복이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와 함께 더 즐겁게 살기위해 선택한 이직이 내 10년간의 커리어를 망가트리고, 나의 삶,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까지 위험에 빠지게 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잠시 마음을 추스리는 와중, 장모님께서 임산부인 아내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해 올라오신다고 아내에게 전화를 주셨다. 부리나케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이 말이 아니다. 한 마디로 죽상이다. 일부러 메이크업을 해도 나올 수 없는 안색에 연기로도 안 나올 죽을 상이다.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려고 해도 이미 얼굴이 잿빛이었다. 아내에게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여보, 나 그럼 잠깐 카페에 가서 일단 이직할 수 있는 회사를 좀 검색해볼게."
결혼하고 처음이었다. 친정 부모님이 오시는데 자리를 피하게 된건. 아내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답했다.
"멀리 가지말고 근처에 있어. 부모님한테는 내가 약속 멀리 갔다고 말할게. 부모님도 갑자기 오신거니까 이해하실거야. 부모님 가시면 연락할테니 들어와서 좀 쉬어요."
고개를 끄덕이곤 밖을 나섰다. 나오자마자 '어디 카페가 가장 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고통보를 받자마자 바로 경제적인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 지나가다 봤던 1,500원 아메리카노를 팔고, 노트북을 할 수 있던 카페를 본 기억이 났다. 거리가 좀 있지만 걷기로 했다. 걷는데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입맛이 없어 종일 끼니를 걸러 배도 고플만한데 밥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단 좀 걷기로 했다. 아니, 정신이 나가 그냥 걸었다는 표현이 맞다. 동네를 터벅터벅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걸었다. 걷다보니 갈비탕집이 보였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집이었다. 끼니 하나를 먹더라도 맛있는 집에서 먹어야한다는 주의였는데, 아무 생각없이 그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갈비탕 만 삼천원, 평소 먹는 끼니보다 비싼 축이긴 했지만, 실직자 상태란 생각이 드니 그 갈비탕이 5만원 짜리 삼계탕처럼 더욱 부담되게 느껴졌다.
나는 항상 큰 일을 마치고 나면 국밥류를 혼자 먹는 습관이 있다. 어릴 적 고생할 때부터 무언가를 성취하면 국밥을 먹으며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더욱 다독였었다. 주문한 갈비탕이 나왔다. 저녁시간 전이라 텅비어 있는 식당에 나홀로 앉아 갈비탕을 바라보았다. 김이 펄펄 끓는 갈비탕을 보고있는데, 항상 큰 일을 잘 마치고 먹던 국밥이, 모든걸 잃고 먹는 식사가 된 것 같았다. 갈비탕의 뜨거운 김이 눈에 닿았다. 이 참이라고 느꼈는지 억누르고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주인이 보기에도 이상하게 보이거니와,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가에 맺힌 눈물을 급히 닦았다. 이 식사가 혼자 하는 마지막 외식이라 생각하고 밥을 입에 우겨넣었다. 우울해할 시간조차 없었다. 난 바로 이직할 회사를 찾아야만 했다.
식당에서 나와 카페에 도착했다. 외국계 채용사이트를 들어가고, 내가 하고있는 직무를 검색했다. 100여개 회사의 채용공고가 쏟아져 나왔다.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더 큰 도전을 위해 이직을 결심했을 때의 높았던 자신감과 포부는, 어느새 그 높았던 기세와 자신감에 반비례하여 땅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직원 수가 많은데를 써야하나... 면접은 또 몇 번을 봐야될까.. 아니 면접까지라도 갈 수 있을까, 이젠 어느 회사로 가야하지, 계통은 어디로,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거지...'
걱정과 불안에 가슴이 뛰기 시작할 때,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자주 통화를 하던 터라 어머니의 일상 얘기들을 들었다. 뭔가 내 얘기를 하게 되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응" "아~"와 같이 어머니의 얘기에 맞장구를 겨우 치며 말을 아꼈다. 통화 마지막에 어머니가 물었다.
"이제 곧 출근이지? 거기 출근하는거 확실한건가 싶어서..."
날 해고한 회사는 내 채용이 결정된 후부터 나와의 소통이 뒤죽박죽인 상황이긴했다. 나에게 재택근무 관련 용품을 사라고 했다가, 본사에서 보내준다 했다가 하는 오락가락한 커뮤니케이션들이 꽤 있었고, 고향에 갔을 때 그 얘길 했더니 어머니께서 걱정이셨던 모양이다.
그 때 나는"생긴지 이제 5,6년된 회사고 막 크고 있는 회사라 정신도 없고 체계가 없나봐. 그 체계를 잘 잡고 키워달라고 날 뽑은거야."
라 말하여 어머님을 안심시켰었다. 그때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짓말을 해야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어..회사에서 연락왔지! 출근하라고 연락왔어.ㅎ 걱정안해도 돼. 거기서 이메일도 보내줬고 문제없어.ㅎ"
라 말하며 나오지 않는 웃음을 간신히 끌어냈다. 어머님은 안심하시고 전화를 끊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나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슬프고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다. 내가 한 달도 안 남은 아이 출산과 아내 건강을 보다 더 잘 챙기기 위해 이직한다는 걸 아시는 부모님에게, 방금 해고당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감정을 추스를 즈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이제 들어와도 되요."
카페 밖에 나오니 해가 졌다. 아내와 선선한 밤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는게 낙이었는데, 지금은 당장 집으로 돌아가 회사와 직무를 검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내 다리가 땅속에 박히듯 무거웠다.
집에 와보니, 밖에서 카드 하나를 잃어버렸다는걸 알게되었다. 어제부터 계속 무언가를 까먹고 잃어버린다. 일이나 물건을 항상 잘 챙기는 성격인데, 생각도 못 한 해고 통보로 쇼크를 받은게 평소 생활에 영향을 끼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나를 스스로 죽일 수는 없었다. 욕실로 가 세수를 하며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지지않는다. 더욱이, 지금까지 노력해온 내 인생을 부당한 일 하나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트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위해 더 강해질거다. 정신 차리자! 멘탈 챙기자! 이 정도 시련으로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해고 2일째 되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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