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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총 Aug 22. 2022

Ep.3 꺼져가는 불씨를 지펴

35살, 나는 해고당했다.

두번째 글을 쓰고 난 후, 그 회사로부터 아직도 답장이 오지 않고 있는것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CEO와 HR본부장까지 내 부당한 처사를 방관하는걸까'

'이런식으로 직원을 해고시키는거에 그들은 죄책감이 없는가'

'경력단절로 망가진 내 커리어와 이에 따라오는 악화될 나의 가계 상황, 무엇보다 건강까지 나빠지고되고 있는 내가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스트레스로 가득찬 머릿 속이 더욱더 아파졌다.


우선 그들이 잘못한 처사들을 하나씩 적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의 답변을 예상하여 가상상황을 하나씩 세워 내가 그 큰 회사에게 맞설 수 있는 논리들을 함께 정리했다. 상황을 가정하고 논리들을 정리하면서도,

    '답장이 계속 안오면 이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주말 새벽에 왜 이런 생각과 글을 써야하지?'

    '나는 왜 이러한 부당한 사유로 한 순간에 실직자가 되어야 하지?'

등등,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내 스스로가 나를 포기하게 만드는 나쁜 생각이 불쑥 불쑥 튀어나왔다.


내 생각과 입장을 올바르게 전달되도록 영어로 고치고 또 고치다 보니, 머리 한쪽이 마비가 오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시계가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선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


몇 시간을 잤을까, 아직 오전이었다. 눈뜨기 싫은 하루가 또 다시 시작되었다. 이렇게 눈뜨기 싫은 지옥같은 하루는 처음이었다. 잠을 자면서 이를 악물었는지 모든 치아가 아팠다. '이런 고통스러운 하루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내 삶이 이렇게 끔찍해질 수 있구나. 눈이 안떠졌으면 좋았을텐데 아침이 왔구나.' 등등 이미 잠을 깼지만 침대에 누워 일어날 힘이 없었다. 새벽 5시가 넘어 잠이 든 탓에, 두통도 함께 몰려왔다. 지금 이 무거운 마음을 없애기 위해선 나는 가만히 있으면 안됐다. 오늘도,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급하게 잡힌 지인과 약속으로 밖을 나섰다. 현재 나의 처한 상황에 대해 많은 조언을 줄 수 있는 지인이라 급하게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지인분이 시간을 내주었다. 카페에서 지인을 만났다. 부당해고 통보를 받은 시점부터 빠르게 가슴이 뛰고 몸이 긴장되고, 머리 한쪽이 띵한 기운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에, 커피를 마시면 심장소리가 바깥에 까지 들릴 것만 같았다. 커피 대신, 잘 주문하지도 않는 차를 주문했다.


지인은, 내가 부당해고 연락을 받은 날에도 날 도와주었다.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앞으로 그 회사에게 해야할 액션들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모든게 무너지는듯한 그 날에 내 멘탈을 잡아준 고마운 지인이다.


지인은 카페에서 나의 상황을 듣고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내가 해결할 수 있도록 방안을 제시해주었다. 회사와 대화시 팩트로만 대화를 이어가고 감정적인 언행은 삼갈 것, 만약 답장이 온다면 불합리한 처사를 받은 것에 집중하고, 혹여나 전화나 메세지로 그들이 논점을 흐리려 하면, 그들의 전략에 빠지지 말 것 등등 정말 필요한 내용들을 세세히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지인은 내가 지금 정신상태가 온전치 않고, 극도의 긴장상태로 정상적인 사고나 판단을 할 수 없을거라며 메일이 오게 되면 빠르게 답장하기 보다는, 천천히 정확하게 내용을 작성 후 전달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 머릿 속이 콘서트 장이다. 마치 로맨스, 스릴러, 공포 영화를 한번에 틀어놓은듯 감정이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있었다. 그래도 지인과의 약 3시간의 대화를 통해서,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다. 자리를 떠나며 지인이 말했다. 


    "그런 회사는 너가 입사를 했더라도 언젠가는 그런 일을 저질렀을 회사야. 그리고 이렇게 회사의 대응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자체가, 모든 수입원이 회사의 월급이기 때문에 더욱 긴장되고 걱정이 큰거야."


맞았다. 내가 금수저였거나, 투자로 성공했거나, 투잡을 해서 적절한 수입원이 있어 넉넉한 경제기반을 가족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너졌을까 싶었다. 물론 나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는건 동일했겠으나, 마음 한켠으로는 '이거 없어도 뭐 살만한데'라는 방어기제를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현재는 '이거 없으면 나는 정말 큰일난다. 큰일이 나게되면 이러이러한 일이 생기고, 연쇄적으로 이런 일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나는 최악의 상황으로는 경제적으로 악의 구렁텅이로 빠질 것이다.' 와 같이 절망의 길로 생각이 꼬리를 꼬리를 물고 가고 있었기에, 지인의 말이 더욱 와 닿았다. 지인은 말을 덧 붙였다.


    "그리고 회사원은, 결국엔 고용이 되어야 하는 입장인거야. 이번 건은 정말 말도 안되는 처사이지만, 후에 너가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이런 부당한 일이 있었다면 더욱 힘들었을거야. 지지말고 이겨내서 이 상황 잘 벗어나보자."


지인이 떠나고,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아,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으로 내 차를 운전하는 날이었다. 마지막 운전이었다는게 지금 기억이 나다니... 정말 이 상황이 싫다. 내가 첫 회사를 입사할 때 차량이 필요한 직무였기에 자동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터라, 친척 형이 추천해준 차를 시승도 안하고 사버렸다.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구매한 자동차를 만 9년을 타고, 내일 중고차 딜러에게 인계를 해야한다. 오늘이 마지막으로 차를 탄 날이었는데 그걸 까먹고, 반나절이 지나서 이 글을 쓰는데 기억이 났다. 


오래 탄 차를 팔 때는, 여러 감정이 스쳐지나간다고 한다. 우선 나의 20대를 함께했고, 추억을 함께한 동반자라는 느낌이 들며 매우 슬픈 감정들이 쏟아진다던 선배들의 말들을 들은 적 있다. 지금의 나는 그런 슬픔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당장 차를 팔아 몇백이라도 현금을 보유해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고생많았던 내 차를 떠나 보내게도 되고, 그 돈으로 생활도 해야되고, 오늘도 심경이 매우 복잡하게 되었다. 


내일은 월요일로 내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무시작일이다. 나는 아직 공식입장을 회사로부터 받지 못했기 때문에 출근을 하려고 한다. 이 회사는 직원수가 적어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였기에, 내일 아침 HR에게 이메일을 보내 나의 출근을 알리기로 했다. 온보딩 프로세스는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침에 근무시간에 맞춰 HR에게 메일을 보내면 '내 출근'은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내용은 이럴 것이다.


    "안녕? 나 오늘 근무시작일이야. 그런데 지금 내부망의 내 계정 막혀있던데 풀어줘. 난 나에게 온 온보딩 코스를 들어야돼. 빠르게 확인해줘."


계속해서 이렇게 나는 이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의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나의 이메일에 대한 답장이 올 때까지, 그리고 그들의 공식입장을 들을 때 까지, 나는 기록을 남기고 계속해서 싸워야한다. 


회사를 10년간 다니면서 회사와 사회생활에서 깨달은건, 세상엔 내 머리로 이해 안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법과 도덕을 무시하고도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더욱 바짝차리고,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기록들을 제 3자가 봐도 납득이 되도록 남겨야만 한다. 


아침만해도 꺼져가던 나의 의지를 지인과의 대화로 다시 불태워보는 밤이다. 내일은 내 메일에 대한 공식입장을 회사에서 보내올 지, HR은 내 메일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또 다시 상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그들과 제대로 싸워 이기기 위해선, 내가 나를 망쳐선 안된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해고통보 3일째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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