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다. 눈을 뜨자마자 곁에 둔 폰으로 메일을 확인한다. 역시 그 어느 답신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출근을 해야한다. 근로계약서상 오늘이 출근 시작일이며, 난 아직 회사의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도 받지 않았다. 오전에 어제 보내려고 생각한 메일을 보냈다.
"닫혀진 나의 계정을 복구해주길 바란다."
전에 공식입장을 요청한 메일 수신자에 포함된 HR담당자 들을 넣어 계정을 열어주길 요청했다. 약 2시간이 지났을 즈음, HR들 중 팀원으로 생각되는 근무자, 전에 나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으니, 매니저랑 잘 해결해보라던 그 직원이 또 다시 윗사람을 메일리스트에서 제외한 후, 나에게 답장을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정말 미안하지만, 너의 매니저에게 요청을 해보도록 해."
정말 답이 없다 이 회사는. 나를 부당해고 시킨 아시아 매니저는 내 연락을 모두 무시하고 있었고, HR은 도울 수 있는게 없다는 대답...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아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내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들에게 연락을 취해도 그들은 대답이 없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움직일 수 있을까. 추후에 부당해고 신고절차를 진행하든, 실업급여를 받든, 이 모든 것들도 회사에서 서류를 작성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대답없는 이딴 회사가 그걸 해줄리 만무해 보인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새도 없이, 나는 구청으로 향했다. 오늘은 자동차를 파는 날이다. 중고차 매매 인감증명서 라는것을 띄어 차를 인수하시는 분께 전달드려야 한다. 9년 넘게 탄 자동차를 떠나보내는, 내 인생의 거의 10년을 함께한 자동차를 떠나보내는 날을, 이렇게 더 우울하게 만든 회사가 더욱 원망스럽고 증오스러웠다.아시아 사무실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난동을 피워야하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내 건강상태를 본다면, 며칠 전 부당해고 통보를 받고 난 이후 몸 상태가 매우 심각해졌다.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가 우울해지거나, 울컥 눈물이 고여 흐른다거나, 걷다가 다리가 풀려버리며 넘어질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지금 내 건강상태의 우울함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확연히 드러났다.
이래선 안 된다. 지쳐있고 우울해 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정신을 바로 잡고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나의 가족이 무너지지 않는다. 무너지고 있던 마음과 몸의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 노력했다.
구청에서 서류를 뗀 뒤, 한시간 뒤 기사님이 오셨다. 절차는 간단했다. 자동차를 한번 둘러보시며 사진을 찍으시고는 준비한 계약 서류를 받으시고 바로 운전석에 앉으셨다. 자동차를 떠나 보낼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9년간 탄 자동차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 때였다. 차가 떠난 주차장에서 지금까지 참고 참았던 울분이 터지며 눈물이 쏟아졌다. 극도의 분노와 슬픔이 마음속에서 치밀어 가슴이 막힐 정도로 울음이 터졌다. 현재의 억울한 심정과 내 세상이 망한것만 같은 절망감, 차를 떠나보내는 마음, 그리고 그 차를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한 현재 나의 처지, 분노등이 뒤섞이며 주차장에서 오열을 해버렸다.
터진 울음을 참고 화단에 잠시 앉아 마음을 추스렸다. 마스크가 있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볼때 추하게 울었던 것 같다. 그때 다른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회사는 연락왔어? 몸은 좀 어때?
나의 상황을 듣고는 백방으로 나를 도와주고 있던 지인이었다. 그는 아는 노무사 연락처를 줄테니 한번 찾아보라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노무사에게 문자를 넣었고, 다음주 쯤 상담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주까지 기다리다간 내가 나를 죽일것만 같아, 공손하게 현재의 급한 상황을 말씀드리니 오후 늦게 올 수 있으면 상담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사무실의 거리가 약 3~4KM로 멀리 않았다. 집에서 노트와 펜을 챙겨 걸어가기로 했다. 가끔 거리를 지나다보면 저 사람은 앞을 보고 걷는건가 싶을 정도로 넋을 놓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나, 거리나 지하철에서 통곡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엔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인가 싶었는데,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본인 인생에서 크나큰 충격을 받았던건 아닐까, 만감이 교차했다.
노무사 사무실에 도착했다. 비서분의 안내로 상담실에 들어가 노무사를 기다렸다. 몇 분이 지나 노무사분이 들어왔고, 내가 미리 보낸 내용을 토대로 상황설명 해주었다. 우선 나의 케이스는 '100프로 회사의 잘못인 상황'이었다. 한국에선 합격 메일을 받은 순간부터 그 회사의 근로자로 간주되며, 해고 사유로 말한 '글로벌 경제 상황의 영향'은 이유가 될 수 없으며, 그 이유를 나의 해고와 연관짓는 것도 부당하다는 말이었다. 특히, 해고 사유는 노무사분이 헛웃음이 날 정도로, 한국노동법상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조금 안심되었다.
결론적으로 나의 해고는 '100프로 부당 해고'였다.
하지만, 한국에 사무실이 있고 인원이 많은 회사라면 장기간의 소송도 가능했지만, 나의 경우 10명이 되지 않는 직원에 모든 행정업무는 아시아에서 관장하는 회사였으므로, 이런 경우 외국계 회사가 한국 회사를 폐업처리해버리면 구제받을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아직 어떠한 피드백도 회사로부터 없는 상황에, 한국에서 내린 조치를 외국계의 경우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는 말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말 그대로, 난 부당해고의 회사와 부족한 시간 속에서 싸워야하는 상황이었다.
사무실 밖을 나와 하늘을 봤다. 오늘의 하늘은 회색 빛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저녁이 다가오는 약간은 푸른 빛깔의 하늘이었다.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은채 시간만 가고 있는것 같아 심신이 지치고 있었다. 혹시나 하여 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했으나 어떤 답장도 없었다. 곧 아내가 올 시간이라 집으로 돌아왔다. 최대한 괜찮은 척을 하기위해 컴퓨터를 켜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의자에 앉았다. 아내가 돌아왔고, 평소처럼 아내를 대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모습조차 아내에겐 안쓰러워 보였을 수도 있었겠다.
퇴근 후 집으로 온 아내는 내게 스트레스 받지 말고, 다른 회사들도 있으니 이직을 알아보되 건강은 상하게 하지 말라 하였다. 아내가 있어 그나마 이 상황을 내가 버틸 수 있는 것 같았다.
회사의 연락이 내일엔 제발 오길 바라면서 우선 잠을 청하려 누웠다. 며칠간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그런지 누워있어도 이 빠른 진동이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무거운거처럼 가슴이 갑갑해졌다. 이 기분은 뭐지?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프고 두통이 동반되었다. 잠시 침대에서 일어나 집 안을 빙빙 돌며 걷기 시작했다. 물 한잔을 마시고 곰곰히 몸 상태를 느껴보았다. 평소에 느껴지지 않던 심장의 떨림 증세가 심해지는게 느껴졌다.
부당 해고 4일 째, 내 몸이 망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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