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찾아온 의뢰인을 만나 상담하고, 계약하고 설계 하고 인허가 받고 공사 들어가고, 감리하고 마침내 집이 준공되어 입주를 하고... 그렇게 1년이 훌쩍 넘었슴에도 집 하나가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여전히 작업중인 느낌이 들었던 건 오랜 시간 설계자로서 집착했던 탓도 있고 이 집을 객관적으로 볼수 있는 계기가 없어서였다. 그래서 작업하던 집 하나가 완전히 마무리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시점은 언제나 준공 촬영이 끝나고 그 사진을 처음 받아보는 시점이 되곤 한다. 전문적인 건축사진가 눈에 비친 집의 장면을 보며 비로서 제3자, 관람자 입장이 되는 것이다.
설계 과정이나 히스토리를 모르는 분들에게 이 집은 그저 수영장 딸린 휴양지 별장같은 집이거나 인스타용 사진빨 잘받는 그럭저럭 괜찮은 집, 하룻밤쯤 숙박하면 좋을듯한 스테이 같은 집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실제로 건축주의 인스타를 들어가보면 매일 매일이 휴양지의 한장면이다. 풀장이 가동되는 여름이라 더 그럴것이고.
집구경 하는 분들이나 건축주 눈에 비친 집이 예쁘고 좋아뵌다는건 설계자 입장에서도 기분 좋은 일. 하지만 괜찮은 집 하나가 나오기 위해 이런 저런 드러나지 않은 많은 고민의 시간들이 있었다는 사실. 그 이야기들 조금 풀어놓고 관심있는 분들과 공유하는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브런치도 시작했고 내년쯤 새 책 출간을 생각중이기도하고, 해온 작업 정리를 위한 글쓰기가 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니.
건축 의뢰 처음 오면 가장 먼저 고민하는 건 건축의 배치다.
땅에 대한 이해와 이 집에 살 사람들이 원하는 꿈이 충돌하는 첫번째 퍼즐, 건축의 배치.
때로 건축의 배치는 집의 스타일과 외형을 대부분 결정짓기도 한다. 큰 대지에 작은 집을 짓는 경우, 일반적으로 건물 따로 마당 따로 접근하게 되는 탓에 횅한 마당에 덩그런 집이 되기 일쑤. 세월 흘러 조경이 자리잡고 담도 치고 가족의 생활 스타일이 마당에 자연스레 스며들기전까지 집은 약간 생뚱 맞은 풍경을 보이게 된다. 집은 예쁜데 황량함이 가시지 않는... 때론 집이 별루라 황량함과 그럭저럭 잘 어울리는..
대지 전체를 사용하는 개념으로 집을 펼치고 실내 공간으로 구획되는 매스와 마당으로 사용될 외부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엮으면 집은 안밖의 구분이 없는 완결된 형태가 되고. 실제 점유하는 면적보다 존재감이 더 커보이는 고유의 스타일을 갖추게 되는데 이 역시 말은 쉽지만 적용 가능한 땅이 있고 안되는 땅이 있다.
양양 류원은 대충 이런 개념으로 접근해서 마무리까지 잘 된 케이스, 처음부터 마당, 집 나누지 않고 하나의 틀 속에 영역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공사 중에 집 재료와 일부 인테리어 방식들이 건축주와 시공자간의 현장 협의로 조정되긴 했으나, 직영공사라면 늘 벌어지는 범위 수준이어서 원 설계안을 최대한 존중해주셨고. 좋은 결과로 잘 마무리 되었다. 사소한 변경들이 집 큰 개념과 분위기에 별 영향을 못 준 이유도 집의 큰 틀이 집의 전체를 설명하는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작은거 하나 변경할때마다 설계자 존중하며 동의 구하고 의견을 공유했던 건축주와 시공자 입장에선 사실 좀 귀찮고 신경쓰였을것이다. 큰 틀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설계자가 좀 불편했을 수도 있었을거고. 하지만 지나고보니 결국 몇가지 분기점 마다 서로의 논의 과정이 중요한 결정마다 역할을 했고 건축주나 시공자 모두 과정, 결과 만족하는 눈치여서 다행이다. 어떤 건축이든 참여한 모든 멤버들 상호 간의 배려와 이심전심, 한마음이 있어야 결과가 좋다. 그 이치를 새삼 느낀 나이스한 프로젝트였다.
류원의 준공촬영은 최진보 작가가 수고해주셨다. 작가님이 보내준 준공 사진을 한장씩 보며 집을 돌이켜보니 과정 중에 있었던 여러가지 생각의 지점들이 떠오른다. 틈날때마다 한꼭지씩 <나우랩의 설계일지>라는 주제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말하자면 작업했던 집들의 설계 후일담이랄까. 먼저 류원부터 하나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