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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Sep 17. 2022

하나님은 귀머거리야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17. 하나님은 귀머거리야  



들어가기에 앞서, 대화 중 나온 맥락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불가피하게 ‘귀머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청각 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로서 지양되어야 함이 분명함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독자분들께 사과드리며 다시는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내가 이 집에서 이사를 나가게 되면, 다 위층 교회 탓이야.”

“시도 때도 없이 악쓰며 방언을 해.”

“밥 먹고 힘쓸 데 없나 봐. 어차피 하나님은 귀머거리인데.”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대낮부터 위층에서 소음을 양산하는 교회가 영 불쾌하셨나 보다. 더불어 지난 30년을 신앙심에 속아 미련한 결혼 생활을 지속해 온 자신이 떠올라 불쾌하셨으리라.   


엄마의 전남편은 목사다. 평생 제대로 된 직장생활도 해본 적 없던 그는 돌연 목사가 되겠다며 대학에 들어갔다. 그것도 IMF가 터진 해에. 그 뒤로 대학원, 전도사 생활, 목사가 되자마자 타지에서 개척교회까지. 이 모든 과정을 언제나 충분한 설명이나 논의 없이 늘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전남편이 그렇게 자기만의 길을 가는 동안 엄마는 내팽개쳐진 집과 두 아이를 혼자 돌봐야만 했다. 마찬가지 신앙인이었던 엄마는 그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이를 보필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늘 물었다. 정말 저 사람이 가는 저 길이 맞는 길이냐고. 늘 울부짖었다. 그 길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해야 하느냐고. 대답은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이란 결국 개개인이 품고 있는 마음이 투영되어 형성되고, 그것이 다시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식으로 존재한다고 여긴다. 엄마는 이혼을 결심하고 나서야 나의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는 하나님과의 연을 끊었다. 자신을 희생의 굴레에 끼워 넣는 하나님은 이제 엄마의 인생에 필요 없어졌으니까.    


그래서 엄마는 불쾌하다. 돌아오지 않을 답을 기다리며 온종일 울부짖는 이들을 보면 지난 30년 세월의 자신이 떠올라서.   


하지만 나는 엄마가 구원받았다고 믿는다. 이제야 비로소 다른 누구의 의지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비록 아직은 지난 세월의 상처가 엄마의 발목을 붙잡고 있지만, 한때의 성장통이리라 믿는다.      



※ 오늘의 잘한 일   


- 아직 주일이 아닌 일요일이 낯선 엄마와 나들이 약속을 잡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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