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웅보 Sep 13. 2022

엄마 요리 맛없어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16. 엄마 요리 맛없어      



사실 거짓말이다. 그동안 살면서 엄마 요리에 불만을 느껴본 적 없다.   


오히려 돌이켜 보면 참 감사하다. 엄마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부터 줄곧 직장생활과 집안일을 병행했다. 물론 모든 끼니를 차려 먹기는 무리였고, 밑반찬도 반 이상 사서 먹었다. 하지만 부엌에는 언제나 엄마가 끓인 국, 찌개가 준비되어 있었고, 밥솥이 비어있는 일도 드물었다. 심지어 드문드문 도시락을 싸던 시절에도 이른 아침부터 최소 3첩 이상의 도시락을 싸주셨다.   


고등학교는 기숙사에서, 대학은 타지에서 생활하며 비교적 일찍 엄마 밥상을 졸업했다. 그리고 자취를 시작하면서 요리도 제법 익숙해졌다. 요리에 관심 많은 백수는 20년 넘게 일과 집안일을 병행해온 엄마의 요리 경험치를 어느새 따라잡았다.   


그즈음부터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의 맛이 달라졌다. 도착 시간에 딱 맞게 차려진 밥상에는 온갖 명절 음식부터 시작해 쭉 마음에 두었던, 과거 자식들이 좋아했던 음식들이 빼곡했다. 어린 시절 그저 휘황찬란하기만 했던 명절 밥상에서 부족한 잠, 늘어난 주름과 굳은살, 여기저기 성한데 없는 몸뚱이가 바삐 움직이며 흘린 땀의 맛이 났다.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그해 명절, 부모님이 우리 집으로 올라오기로 하셨다. 다소 어색하면서도 설레는 상황에 전화기 너머 엄마는 여전히 온갖 메뉴를 읊고 있었다. 뭐는 준비해서 올라가고, 뭐는 미리 장을 봐놓고, 또 뭐는 가서 장을 보고. 들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는 엄마의 이야기를 끊고 고백했다.   


“미안, 엄마 요리 맛없어. 그러니까 이번 명절에는 아들이 해주는 밥 먹어요.”   


일주일 전부터 장을 보고, 자취와는 거리가 먼 요리들을 처음 시도하며 진을 뺐다. 대개의 요리가 그렇지만 특히나 명절 음식은 들이는 품 대비 결과물이 빈약했다. 이 고생을 1년에 두 번이나 전국의 엄마들이 하고 있구나, 넌더리가 났다.   


그래도 그해 명절은 유독 설레었고, 반가웠으며, 기뻤고, 아쉬웠다.    


그 뒤로 명절 음식은 줄곧 내가 관장한다. 엄마를 덜 고생시키려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객관적으로 내 요리 실력이 더 나았다. 아들이 이런 걸 하느냐 만류하던 엄마도 이제 아들 음식이 제일 맛나다며 좋아한다.   


앞으로도 엄마 요리는 맛이 없을 예정이다.

이전 15화 고양이들의 루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