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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Sep 07. 2022

고양이들의 루틴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15. 고양이들의 루틴          



전업주부가 되어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이 있다. 그중 가장 귀여운 사실은 고양이들의 하루 루틴이다.     


애인님이 출근을 위해 기상하시고 내가 조금 너 늦잠을 누리는 동안 작은 얼룩 고양이는 침대 빈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식사하는 시간, 화장실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 그녀는 그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물이나 공간의 소유권을 그것을 가장 오래 점유하는 자에게 있다고 상정할 수 있다면 이 침대는 우리 작은 얼룩 고양이의 것이다.     


가끔 외부 소음이나 청소 소리 등으로 잠에서 깨면 어김없이 서러운 울음소리로 쓰다듬을 요구 한다. 이 칭얼거림은 내가 바쁘건 말건 그녀가 다시 잠들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이 포즈와 뻔뻔한 표정, 앙칼진 목소리까지. 괴롭히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반해 우리 큰 하얀 고양이는 상대적으로 부지런한 편이다. 우선 그는 애인님의 기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애인님께서 출근 전 거실에서 잠시 뉴스를 보는 시간에 소파에서 찐한 아침 인사를 나눈다.     


애인님이 다시 출근 준비로 바빠지면 아침 햇살이 가장 잘 드는 베란다, 그곳에 마련된 캣타워에 오른다. 캣타워 탑층에 마련된 숨숨집에 들어가 하얀 얼굴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다시 잠자리에 든다.     


잘생긴 우리 아들


이 잠은 꽤 깊어서 내가 아침 식사를 마칠 때까지 깨지 않는다. 내가 아침 식사를 마치면 어느새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장난감을 물어와 놀이를 청한다. 또 내가 얼추 집안일 루틴을 마치는 오후 3시쯤에도 반복된다. 우리 하얀 고양이는 제법 영민해서 내가 한가할 때를 구분하여 접촉을 시도한다.     


인사를 나누고 애교를 갈구하고 놀이를 청하는 토막 시간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대부분 잠을 잔다. 하얀 고양이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지만, 낮에는 베란다 아니면 안방의 숨숨집에서 잠을 잔다. 작은 얼룩 고양이는 앞서 언급하였듯 여전히 침대 위다.     


그럼 우리 얼룩 고양이는 언제 침대에서 벗어나느냐. 나와 애인님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나란히 앉을 때다. 정확히는 그보다 조금 먼저 나와서 어서 소파에 앉으라고 보챈다. 우리가 소파에 앉으면 사이에 누워 갸르릉 소리와 함께 쓰다듬을 받는다. 그러는 동안 하얀 고양이는 거실 테이블에 누워 궁둥이를 토닥토닥 받는다.     


잠자리에서도 루틴은 이어진다. 하얀 고양이는 내 왼편에, 얼룩 고양이는 두 사람 사이에 자리 잡는다. 그렇게 한참 쓰다듬을 받다가 우리가 잠들 때쯤 각자의 잠자리로 이동한다.     


혼자 집안일을 하고 있다 보면 가끔 이 루틴을 방해하고 싶어 진다. 특히 햇살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나는 하얀 고양이의 다소 풀 죽은 상위 귀여운 얼굴을 볼 때나, 침대에서 사람처럼 누워 핑크빛 뱃살을 드러낸 얼룩 고양이를 볼 때 그렇다.     


기본적으로 얼굴이 울상이다. 잠이 덜 깨면 더욱 그렇다.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일부러 얼굴을 들이밀며 부빗부빗 해본다. 털이 얼굴에 달라붙어도 좋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니까.     


무엇보다 이 루틴이 사랑스러운 것은 그것이 깨질 때이다.     


간혹 영문 모를 우울함으로 인해 침대나 소파에 붙잡혀 있을 때,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본다. 그러고 귀를 기울이면 잠시 뒤 바쁘게 바닥을 차며 달려오는 하얀 고양이 발걸음 소리나, 왜 부르느냐며 구시렁거리며 다가오는 얼룩 고양이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내 부름에 루틴을 깨고 달려오는 그 발걸음 소리가 참 좋다.          



※ 오늘의 잘한 일     


- 고양이들의 루틴에 끼어들어 잔뜩 쓰다듬어 주었다.

- 오늘따라 글이 잘 안 써졌는데 고양이 자랑으로 한편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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