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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Sep 01. 2022

엇갈리는 애정의 언어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13.

    

우리 큰고양이는 언제나 간단한 인사 후에 궁둥이를 들이민다. 책상, 소파, 침대 어디서든. 웬만해서는 사람을 피하거나 기분이 나쁜 일도 잘 없어서 누구에게나 궁둥이를 내밀고는 쓰다듬어달라 보챈다.   

  

때로는 이쁜 얼굴 좀 차분히 마주 보고 싶고, 턱 밑을 긁어줄 때 기분 좋게 감긴 눈을 보고 싶은데 허구언날 궁둥이만 내민다. 자는 시간 빼고는 온종일 궁둥이를 쓰다듬어달라 찡찡거린다.     


안기는 것도 싫어한다. 어디 sns에 나오는 고양이들처럼 슬픈 집사 마음 좀 헤아려서 쏘옥 안겨있어 주면 얼마나 좋으련만 딱 10초 정도 안겨있다가 성내며 빠져나간다. 그리고 또 궁둥이 내민다.     


가끔 이래도 좋을까 싶을 정도로 리드미컬하게 궁둥짝 퍼커션 연주를 하거나아프기 직전까지 팡팡 찰지게 두드리면.... 엄청 좋아한다. 뒹굴고 갸르릉 거리고 계속하라며 성화다.     

항상 이렇게 눈높이에 들이민다.

우리 작은 고양이는 사춘기 여자아이 같다. 기분 좋을 땐 세상 다 좋고, 기분 나쁠 땐 세상 다 싫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기분 좋을 때가 더 많아진다는 사실은 무척 다행스럽다.     


하지만 이쪽도 기분 좋음을 반드시 자기식으로 푸신다. 우선 몸에 올라타거나 딱 붙어 누우신다. 그리고는 쓰다듬는 손이나 가까운 사람의 신체를 핥으신다. 주구장창 한 곳만 계속 핥으신다.     


보통 고양이들은 자기 혀가 까슬하다는 것도 알고, 무엇보다 그루밍은 서열이 높은 이가 낮은 이에게 해주는 보살핌 행위로 인식하기에 사람을 주구장창 핥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하지만 우리 작은 고양이는 아기 시절 길에서 구조되어 고양이스러움이 다소 부족하다. 작은 고양이에게 핥는 행위는 그냥 애정표현이자 기분 좋음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악의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고양이 혀로 계속 핥아지면 아프고 쓰라리고 축축하다. 심지어 미안하지만 조금 침냄새도 난다.     


너도 느껴보라며 똑같이 핥는 시늉을 해보면.... 좋아한다. 설득되지 않는다.     

잘 시간이 되면 늘 침대를 선점한다. '뭐하냐, 불 끄고 와서 누워라.'

분명 그 기반에는 애정이 깔려 있을 테지만 각자가 서로에게 원하는 바가 다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생기는 미스 커뮤니케이션일까?     


하지만 나와 애인님도 마찬가지다. 편하다는 이유로 등을 돌려 누워 애인님을 서운하게 하는 일이 종종 있다. 마찬가지 우리 애인님도 나에게......우리 애인님은 나에게 서운함 따위 주시지 않는다. 언제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나와 취향부터 생각까지 모든 것이 잘 맞는 사람 vs 나와는 거의 정반대일 정도로 많은 것이 다른 사람 중 누가 더 좋은 연인이냐는 고전적인 질문에서 내 대답은 늘 후자였다. 전자는 결국 환상에 불과할뿐더러 애정이란 행위의 근본은 서로 다른 것을 조율하는 과정과 그렇게 도출된 결과를 소중히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오늘만은 원하시는 만큼 두드려드리고 쓰다듬어드려야지. 그러니까 고양이들아 너희도 제발 밥 먹을 때만은 양보해줘. 밥에 털 들어가. 알겠어, 이따가 궁디팡팡 해줄게. 약속.          



※ 오늘의 잘한 일     


- 큰 고양이가 질려서 떠날 때까지 궁디팡팡 해줬다.

- 잠자리에 붙어 누운 작은 고양이를 쫒아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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