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전업주부의 명절 전 증후군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남성 전업주부의 명절 전 증후군은 차례상 차리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백수, 취준생들의 시름과 맞닿아있다.
비록 우리가 아직 정식 부부는 아니지만, 벌써 여러 해 명절을 각 집안 식구와 함께하고 있다. 양가 모두 친척 포함 대가족이 모이는 일이 없어진 시기와 우리가 양가에 동거 사실을 알린 시기가 맞물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문제는 지난 몇 년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며 상당 기간 비자발적 남성 전업주부로 살아온 지난했던 세월을 애인님 댁에 상세히 알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거 직장생활을 하며 맞이하는 명절은 다소 피곤할 수는 있어도 오랜만에 가족과 단란히 어울리며 휴식할 기회였다. 직장에서 받은 명절 선물과 별도로 준비한 선물을 나누며 사회생활의 보람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금의 백수, 전업주부에게는 어떡해야 내 한심한 처지를 들키지 않고, 또는 화재에 올리지 않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최대의 난관이다.
지난밤, 애인님께 슬며시 물었다. 내가 백수라는 사실을, 취업하지 못해 댁의 귀한 따님께 기생하여 살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야 할지, 알려야 할지. 알린다면 어떤 방식이 좋을지 여쭈었다.
머리를 몇 번 긁적이던 애인님은 시큰둥하게 말씀하셨다.
'꼭 알려야 하나?'
'언젠가 나중에 사실 과거에 이랬던 시절이 있었다고 쓰게 웃으며 말하고, 그랬구나 하고 품어주는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
'가족인데.'
거참. 이분은 늘 꼬이고 꼬인 내 고민의 실타래를 화끈하게 통으로 태워버리신다.
사실 이 질문의 근본에는 부끄러움이 있다. 스스로가 현재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고, 그로 인해 이 상황을 가족에게 당당히 내보이지 못하고, 따라서 애인님의 등 뒤에 숨어 피하고 싶다는 비겁한 마음.
이것이 비단 삶의 기준에 따른 차이라면 설명하고 설득할 일이지만, 누구보다 나 자신이 현재의 내 삶에 확신이 없는 탓에 생긴 문제일터.
하지만 애인님은 언제나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신다. 그래서 이렇게 현재 상황에 매몰된 나를 멀리 보라며 토닥이신다.
과연 언제가 되어야 그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묻어두기로 한다. 괜히 마음만 조급하게 만들 테니까.
연이은 재해로 밥상 물가가 고민인 요즘이다. 푸짐한 한 상도 좋지만, 그저 소탈하고 솔직한 속마음만 상에 올리고 싶은 주부 마음이다.
※ 오늘의 잘한 일
- 감기 기운 핑계로 애인님께 잔뜩 보살핌 받았다. 몸도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