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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Aug 31. 2022

배달음식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12.


어머니가 늘 직장생활을 하셔서 어릴 적부터 배달음식에 비교적 친숙했다. 당시만 해도 짜장면 한 그릇도 배달이 되던 터라 배달음식은 무척이나 합리적인 한 끼였다.     


자취를 시작하고부터는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생기는 대로 배달음식을 애용했다. 미천한 요리실력의 자취생에게 그만한 특식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전업주부가 된 지금, 배달음식은 너무나 큰 도전과제이다.     


어렸을 때는 매 끼니 직접 요리하는 할머니 세대가 때론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시대와 관계없이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결정이었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이 무슨 지당한 당위가 있어 배달음식을 시킨단 말인가. 하물며 지금처럼 최소주문금액, 배달비 같은 조건들이 생기고 나니 집밥은 다소 수고스럽더라도 주부로서 양심을 지키는 선택이 되었다.     


물론 배달음식을 주문해도 좋을 당위성이 있다. 첫째, 합당한 사유로 피곤할 때. 둘째, 동거인께서 원하실 때. 셋째, 집에서 조리하기 곤란한 음식이 먹고 싶을 때.     


우울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하루 루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애인님과의 저녁 식사 준비이다. 고심하여 결정한 메뉴를 공들여 준비하고 나를 위해 다소의 호들갑을 떨며 잡숴주시는 애인님을 보며 주부로서의 중대한 임무를 마치고 퇴근을 명 받는다.     


하지만 배달음식은 이 루틴을 깸과 동시에 주부의 임무와 그 임무를 수행함으로 지켜지는 자존감의 위기를 불러온다.     


하물며 혼자 먹는 끼니를 위해 배달음식을 시킨다? 지금으로서는 세상이 무너져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통장 잔고로 보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집안 내 위상으로 보나, 무엇보다 집안에 가득한 식재료와 조리기구로 보나 전혀 합당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유에도 불구하고 실상 전업주부에게 배달음식이 당기는 가장 크고 잦은 이유는 단 하나, 밥하기 귀찮을 때이다.     


이 귀찮음이란 그 어떤 당위도 갖추고 있지 않으면서 모든 상황적 요인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유혹이다. 핸드폰 배달앱을 켰다 껐다, 냉장고를 열고, 닫고를 반복하며 유혹을 떨쳐내는 일이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생긴다.     


그런데 며칠 전 이 유혹에 힘을 실어주는 변수가 발생하였다. 바로 얼룩소 포인트. 생각보다 너무 많이 들어온 이 꽁돈(?)이 스스로에게 복잡한 생각 잠시 접어두고 마음 놓고 메뉴를 고를 권리를 주었다.      


마치 독이 든 성배. 이 성배를 취할 것이냐. 살짝 늦은 점심을 앞둔 시간에 나는 최근 들어 가장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나는 자칫 자존감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어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고육지책을 꺼내 들었다.      

종이인데 무겁다.

바로 다음 달에 처리해야 할 모든 명세서 확인하기였다. 여기는 다섯 자리, 저기는 여섯 자리, 차례로 확인되는 숫자들을 더하니 얼룩소 포인트는 진작에 넘어섰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비록 상처뿐인 평화일지라도. 오늘도 무사히 충실한 주부라는 아이덴티티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 오늘의 잘한 일     


- 일련의 과정을 듣고 가엾이 여기신 애인님께서 시켜주신 중국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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