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10.
이번 여행의 첫 시작은 적어도 내가 아니었다. 친구 한두 명을 집으로 초대할 계획이 다른 친구들에게 우연히 알려지며 인원이 늘었고, 집에서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게 되어 파티룸이나 에어비앤비 등을 알아보다가 어느새 바닷가 펜션으로 결정이 났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행사의 준비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예산과 시간의 한계이다. 하지만 직장인 친구들의 풍부한 출자금과 백수의 유휴시간이 만나 그 한계가 극복되었다.
여행의 주제는 언제나 그렇듯 음주가무. 다양한 주종과 그에 맞는 다품목의 안주를 계획한다. 식자재는 인터넷으로 미리 여행 전날에 받아볼 수 있도록 주문을 마친다. 찌개 등 조리가 필요한 음식은 미리 반조리 레토르트 형태로 만들어둔다.
숙소를 정하는 기준은 엄격하다. 오션뷰? 맛집 인근? sns용 포토스팟? 아니, 우리의 음주가무가 주변에 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독채 또는 방음이 잘 되어있는 시설. 혼성으로 이용해도 불편함 없도록 화장실과 방은 반드시 두 개 이상. 위 조건에 충족하는 옵션들을 제안하여 최종 숙소를 확정 짓고 예약을 확정한다. 여러 지역에서 모이는 만큼 최적의 동선을 고려 집결지점을 결정, 인근의 렌트카를 예약한다.
이 모든 준비과정과 당일 운전 및 음식 조리를 혼자 맡게 되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백수에게 남아도는 것이 시간과 노동력이고, 반면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적 접촉이니까.
종종 친구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최근의 나의 처지 즉, 사회적 접촉에 목말라 있고, 자존감은 바닥나 있고, 공유할 만한 특별한 근황도 없어진 재미없고 초라한 나의 처지가 더더욱 부각 되어 자신을 우울감에 빠뜨릴까 걱정한다.
그래서 더 준비에 공을 들인다. 생색이라도 내보려고. 너희들 백수 친구 덕에 호강한다 배짱부려보려고.
준비는 만전이다. 걱정 그만하고 자자.
※ 오늘의 잘한 일
- 여행 준비를 완벽히 해냈다.